아담 이전에도 인간은 존재했나? 네피림의 존재...
[질문] 아담 이전에도 인간은 존재했나? 네피림의 존재...
번호: 6042 글쓴이: 성락인
조회: 1 날짜: 2005/02/10 11:33
아담 이전에도 사람이 있었다. 창세기 1장의 사람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말씀에 따라 오랜 세월에 걸쳐 땅에 충만해졌다. 그들에게는 영이 없었으나 막연하게나마 하나님을 인식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땅에 충만한 이 사람 중에 한 사람을 택하셔서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심으로써 그 사람을 생령(生靈)이 되게 하셨다(창2:7). 남자와 여자를 동시에 영적 인간으로 만드신 것이 아니다(말2:15). 하나님은 생령, 즉 영적 인간을 하나만 만드셨다. 이 영적 인간, 생령을 성경은 아담이라 한다. 그리고 이때 아담을 택하고 남은 모든 인간들은 선택에서 탈락되었다. 그들은 그후 '떨어지다.'라는 뜻에서 '네피림'이라 불리었다.
가인이 두려워한 사람들은 당시의 네피림(Nepirim)이다. 만일 아담이 최초의 사람이라면 그 아들 가인과 아벨이 태어났을 때 지구 위에는 단 네 사람만 존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후 가인이 아벨을 죽였으므로 지구 위에는 아담과 하와와 가인 단 세 사람이 존재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살인한 가인이 하나님께 쫓겨나면서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창4:14) 했다. 이는 아담이나 하와는 절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인이 두려워한 이 사람들은 누구인가? 어떤 학자는 아담이 가인과 아벨 외에도 이미 많은 자녀들을 낳았는데 성경에 이들이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라 한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가인과 아벨의 뒤를 이어서 세 번째 아들인 '셋'을 주셨음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창4:25,창5:3∼4). 그러므로 아담에게 또 다른 자녀들이 있다면 그들은 셋이 태어난 이후에나 가능하다. 결국 가인이 두려워한 사람들은 이전부터 존재했던 네피림이다.
네피림은 고대 인류이며 고대 문명의 주체다. 하나님이 네피림들에게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고 지배하라 하셨기에(창1:28) 그들은 땅을 이용해 잘 살려고 노력하였으며, 그 결과 발달된 문화를 가졌을 것이다. 그들은 짧게는 수천 년에서 길게는 수십만 년에 걸쳐 문화를 갖고 있다가 마침내 노아 시대에 물 속에 잠기기 전까지 절정을 이루며 발달하였을 것이다. 고고학에서 밝혀내고 있는 많은 고대 문명의 찬란함은 이들 네피림의 솜씨다. 그러므로 아담이 20만 년 전에 있었던 사람으로 본다면 창세기의 많은 기록들은 신화로 취급되기 싶다.
[답변] 글을 분명하게 쓰심이 좋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담 이전에도 인간은 존재했습니다. 그 근거는 이것입니다 라는 분명한 자신의 입장을 말씀하심이 좋겠습니다. 즉 개연적 질문인데 그러한 것의 당위성이라고 하는 것을 말할 수 있지 않으냐는 개념에서 출발하심은 개연적 사실을 임의적으로 사실화시키시는 가운데서 옳지 못하다고 봅니다.
역사이해라고 함이 무엇인지.. 성경에서의 역사라는 사실을 중요시 하면서도 그 역사이해에 있어서 시간이라고 함이 주의 창조하심에서 그 실존적 정당함을 가진다든지.. 그러한 것에 대한 재고가 전혀 없이 개연적인 개인적 견해의 기정 사실화한 것을 전제로 비판적 판단의 입장에서 질문을 하심은 그렇게 옳게만 보이지 않군요..
성경의 계시적 사실이라고 하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면서도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인식이 성경사실을 판단할 수 있다는 입장은 재고되어져야 할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인식의 방향성과 성경의 실존적 성격이라고 함을 생각하지 않고 단순한 판단에서 더 무리한 질문을 하신 것으로 봅니다.
구체적으로 언급한다면.. 시간의 보편성으로 성경을 비로소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시간과 역사 안에 주의 계시가 주어진 것은 사실이면서도 그러한 것이 역으로 판단되어지고 인식되어질 수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분별하지 못한 역사보편에 대한 인식이라고 하는 것이 많은 역사가들의 인식적 교만과 그 앞선 죄가 나타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하나의 사실을 말할 때에 그것을 기정사실화할 때에 그것을 판단하는 인식이라고 함을 제대로 분별하지 않은 가운데서는 합리성의 불연속성에서 자기를 묶는 것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당위성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 인용이라고 함에 있어서 논리적 순서를 임의적으로 규정해서 그 논리적 순서에 따른 실존의 순서를 임의적으로 규정할 수 있다는 식의 판단은 성경의 역사성에 대한 인식의 판단을 바르게 하고 있다고 할 수 없으며 또한 성경의 자증이라고 함의 성격을 생각하지 않고 성경을 해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개연적 사실을 입각해서 하시는 질문은 이미 의미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좀더 비판적인 입장에서 아담 이전에 인물들의 설정이라는 문제에 대하여서 고고학적인 증명에 따른 증거라든지 그러한 자료를 제시하시든지 아니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로써 출처를 말씀해주시면 좀더 비평적 입장의 역사관에 대한 사실규정의 임의적 입장을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러한 점에 좀더 성실히 말씀하실 수 있는지 기대해보겠습니다.
번호: 6042 글쓴이: 성락인
조회: 1 날짜: 2005/02/10 11:33
아담 이전에도 사람이 있었다. 창세기 1장의 사람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말씀에 따라 오랜 세월에 걸쳐 땅에 충만해졌다. 그들에게는 영이 없었으나 막연하게나마 하나님을 인식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땅에 충만한 이 사람 중에 한 사람을 택하셔서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심으로써 그 사람을 생령(生靈)이 되게 하셨다(창2:7). 남자와 여자를 동시에 영적 인간으로 만드신 것이 아니다(말2:15). 하나님은 생령, 즉 영적 인간을 하나만 만드셨다. 이 영적 인간, 생령을 성경은 아담이라 한다. 그리고 이때 아담을 택하고 남은 모든 인간들은 선택에서 탈락되었다. 그들은 그후 '떨어지다.'라는 뜻에서 '네피림'이라 불리었다.
가인이 두려워한 사람들은 당시의 네피림(Nepirim)이다. 만일 아담이 최초의 사람이라면 그 아들 가인과 아벨이 태어났을 때 지구 위에는 단 네 사람만 존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후 가인이 아벨을 죽였으므로 지구 위에는 아담과 하와와 가인 단 세 사람이 존재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살인한 가인이 하나님께 쫓겨나면서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창4:14) 했다. 이는 아담이나 하와는 절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인이 두려워한 이 사람들은 누구인가? 어떤 학자는 아담이 가인과 아벨 외에도 이미 많은 자녀들을 낳았는데 성경에 이들이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라 한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가인과 아벨의 뒤를 이어서 세 번째 아들인 '셋'을 주셨음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창4:25,창5:3∼4). 그러므로 아담에게 또 다른 자녀들이 있다면 그들은 셋이 태어난 이후에나 가능하다. 결국 가인이 두려워한 사람들은 이전부터 존재했던 네피림이다.
네피림은 고대 인류이며 고대 문명의 주체다. 하나님이 네피림들에게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고 지배하라 하셨기에(창1:28) 그들은 땅을 이용해 잘 살려고 노력하였으며, 그 결과 발달된 문화를 가졌을 것이다. 그들은 짧게는 수천 년에서 길게는 수십만 년에 걸쳐 문화를 갖고 있다가 마침내 노아 시대에 물 속에 잠기기 전까지 절정을 이루며 발달하였을 것이다. 고고학에서 밝혀내고 있는 많은 고대 문명의 찬란함은 이들 네피림의 솜씨다. 그러므로 아담이 20만 년 전에 있었던 사람으로 본다면 창세기의 많은 기록들은 신화로 취급되기 싶다.
[답변] 글을 분명하게 쓰심이 좋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담 이전에도 인간은 존재했습니다. 그 근거는 이것입니다 라는 분명한 자신의 입장을 말씀하심이 좋겠습니다. 즉 개연적 질문인데 그러한 것의 당위성이라고 하는 것을 말할 수 있지 않으냐는 개념에서 출발하심은 개연적 사실을 임의적으로 사실화시키시는 가운데서 옳지 못하다고 봅니다.
역사이해라고 함이 무엇인지.. 성경에서의 역사라는 사실을 중요시 하면서도 그 역사이해에 있어서 시간이라고 함이 주의 창조하심에서 그 실존적 정당함을 가진다든지.. 그러한 것에 대한 재고가 전혀 없이 개연적인 개인적 견해의 기정 사실화한 것을 전제로 비판적 판단의 입장에서 질문을 하심은 그렇게 옳게만 보이지 않군요..
성경의 계시적 사실이라고 하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면서도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인식이 성경사실을 판단할 수 있다는 입장은 재고되어져야 할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인식의 방향성과 성경의 실존적 성격이라고 함을 생각하지 않고 단순한 판단에서 더 무리한 질문을 하신 것으로 봅니다.
구체적으로 언급한다면.. 시간의 보편성으로 성경을 비로소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시간과 역사 안에 주의 계시가 주어진 것은 사실이면서도 그러한 것이 역으로 판단되어지고 인식되어질 수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분별하지 못한 역사보편에 대한 인식이라고 하는 것이 많은 역사가들의 인식적 교만과 그 앞선 죄가 나타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하나의 사실을 말할 때에 그것을 기정사실화할 때에 그것을 판단하는 인식이라고 함을 제대로 분별하지 않은 가운데서는 합리성의 불연속성에서 자기를 묶는 것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당위성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 인용이라고 함에 있어서 논리적 순서를 임의적으로 규정해서 그 논리적 순서에 따른 실존의 순서를 임의적으로 규정할 수 있다는 식의 판단은 성경의 역사성에 대한 인식의 판단을 바르게 하고 있다고 할 수 없으며 또한 성경의 자증이라고 함의 성격을 생각하지 않고 성경을 해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개연적 사실을 입각해서 하시는 질문은 이미 의미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좀더 비판적인 입장에서 아담 이전에 인물들의 설정이라는 문제에 대하여서 고고학적인 증명에 따른 증거라든지 그러한 자료를 제시하시든지 아니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로써 출처를 말씀해주시면 좀더 비평적 입장의 역사관에 대한 사실규정의 임의적 입장을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러한 점에 좀더 성실히 말씀하실 수 있는지 기대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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