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비평에 대하여
글을 씀에 있어서: 글을 읽고 비윤리적으로 대중을 기만하는 반기련을 비롯하여 안티적 입장의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예의라고 하는 것과 글을 씀에 있어서 개인적인 입장을 이해하지 못함에 따라 아니 이해하지 않으려고 함의 정직함이 결여됨에 따라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글쓰기라는 것에 대한 견해의 차이는 보편적으로 말한다면 문학과 철학이라고 함의 차이로서 말할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에서 공부하신 박이문교수의 문학과 철학이라는 것의 개념구분적 차이의 가능성에 대한 재고를 위한 글을 쓴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 문학과 철학이라고 함이 사상의 전달에 대한 회의적 개념의 동반으로 인해 재구성이라는 도구적 개념만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각주1)
이러한 것은 사실 비평이라고 함의 양식이라고 하는 것이 공허하고 아주 비윤리적 극단을 달리게 하며 기만적 요소를 위한 마키아벨리적 개념으로 자리매김되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요소는 말의 내용이라고 하는 것보다도 말의 표현 기법을 우선시하고 있는 것으로 이것은 실재의식이나 실제의식과 같은 것에 대한 개념을 배제한 자들의 기본적인 입장이며 학적으로는 니체의 계보를 잇고 있다고 할 수 있는 데리다와 그에 따른 미국의 예일학파의 영향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각주2)
앞서 비윤리적 개념이라고 함은 그 글을 쓰는 자의 실재의식이라고 함을 문학에서는 전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의 딜레마에서 임의적 자위의 '놀이'를 하고 있는데, 사실 철학적 글쓰기나 사상의 표현에 있어서는 그 글쓰는 자의 기준으로써의 실재와 그에 따른 실제의식이 있는데 그것을 무시하는 것으로써 비인격적인 비판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극단적이라고 할 때에 있어서는 그 글쓰는 자의 실재와 그에 따른 실제의식을 간과하는 가운데서 그 표현적 입장을 임의적으로 해석하고 자의적으로 재구성하여 말하는 소위 어떤이들의 '사료분석'이라는 표현들이 지나친 것으로 모자람에 이르는 비평으로 나타남을 말할 수 있겠습니다.
버틀란트 러셀도 자신을 비평할 때에 학식이 있고 걸맞는 사람이 비평해줄 것을 말한 것을 기억합니다. 그것은 모르고 간과하고 글쓴이에 대한 폄하에서 그 합리성에 대한 기본적 이해의 몰락을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그는 의식해서 말했던 것으로 해석되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암튼.. native에게 그 자신의 나라를 공부하라고 말함에 있어서, 순수한 입장의 표현이 되어질 수 있지만 대부분 비난적 개념의 폄하적 입장을 가지고 말한다고 하는 것은 앞서 말한 글쓰기와 비평에 대한 맹목적 신뢰나 또는 개념없는 막연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에 따른 어리석음의 표현일 것입니다.
글쓰기와 비평에서도 그러한 보편적인 인식의 경향이 어떤 것인가를 이해함이 글쓰는 사람의 인격이 되어질 것이고, 그러한 것을 알지 못하고 행하는 자들은 그러한 것을 가지고 기만하려고 하는 자들의 맹목적 추종자들로서 자기 기만적 추함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어리석음을 자초할 따름인 것입니다.
프랑스에서 한 문호 사르트르.. 그나라 국민들은 한때.. 사르트르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그러한 생각을 할 정도로 그를 신뢰했는데.. 사르트는 정작 그의 글쓰는 것에 있어서 글이 틀린다는 것에 대하여서 그렇게 신경쓰지 않고 그것을 고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글이 아니라 글의 내용이라고함을 말했음에 대하여서 프리드리히 빠제는 말하고 있음을 기억합니다. 그 문호의 인식을 지금도 계승하고 있는지의 여부는 여기서 가릴 것은 아니고 좀더 보편의식에 대한 개념도 없이 글쓰는 것으로 비난하는 어리석음은 피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각주1) 서양사에서 세 악동으로 불리고 있는 자들 중에서 프리드리히 니체의 허무주의적 개념의 발상은 현실을 위한 창조적인 개념으로 해석되어지고 있지만 그것은 니체에 대한 해석의 한 경향일뿐 그의 허무주의적 개념이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가운데서 있게 되어지는 모습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한 것의 경향은 글씀이라고 하는 것의 실제의식이 없는 가운데서 그 방법론적 개념으로서의 논리적 개념이 중요한 것으로 자리매김되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프랑스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것입니다. 그들의 정서는 실증주의적 개념이면서도 그 실증주의적 개념이 어떤 실재적 개념에서의 실증을 말하기에 부적절함을 인식한 나머지 방법의 실제성을 재구성하는 'How'의 입장을 상당히 중요시 하는 합리성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각주2) 데리다와 예일학파라고 하는 책을 볼 수 있고 그러한 가운데서 미국에서의 그 데리다의 인기라고 하는 것에 대하여서 프리드리히 빠제라는 사람은 그의 유쾌한 철학이라는 책에서 조소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꼬리말
글쓴이 반기련을 의식하고 글을 썼습니다. 그 만난 20대 30대 젊은이들의 입장이 날카롭고 보편적인 지식을 갖춘 것을 보면서 참 기본적인 학문적 입장을 취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남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비난하는 모습을 보고 실망이 들더군요.. 00:17
글쓴이 반기련에서는 저의 글에 대한 분석이라고 하는 것이 거의 대부분 글못쓴다고 하며 자신들이 저의 말을 재구성해놓고 웃고 있는 모습이 대부분입니다. 저의 대한 실재와 실제의식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한 가운데서 말입니다. 00:19
글쓴이 그리고 여러 나라 사상들을 읽고 생각할 때에는 그 이질성과 동일성 그리고 유사성과 인용함에 대한 가능성등을 생각해야 하는데 전혀 그러한 것없이 퍼오기도 하고 인용하기도 하는 것을 보면 참 답답함을 느낍니다. 00:20
글쓴이 인터넷의 영향으로 외국을 소개하거나 그곳에서 되어진 일들을 소개하는 각 기자들의 입장에서도 상당히 그러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개인적으로 유감이고 또.. 반기련의 몇몇 철학적 입장이 견고한 자들이 그렇지 못한 자들을 기만해서 글쓰기와 비평을 외곡하고 회원들을 기만하는 경향이 있는 것에 대하여서도 유감이군요 00:22
글쓴이 상대방이 얼마나 배웠는가 하는 학력에 대한 맹목적 판단으로 그의 말을 임의적으로 무시하는 소위 '너 얼마나 배웠어 배우지도 못한 것이 잘난척하네..'이런 입장에서 그 말하는 사람의 말을 맹목적으로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대학원정도 나오면 뭐 더 배울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00:24
글쓴이 불가지론을 넘지 못하는 한계상황에서 학력에 대한 화려한 메달리스트들의 꿈은 실제적이지 못하지요.. 그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그 맹목적 메달리스트들의 화려한 비평은 참 가증스럽기 짝이 없지요.. 00:26
글쓴이 아 개인적으로는 더 공부한 사람을 존중하고 배워야 한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맹목적인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지요.. 물론 불가지론을 넘을 수 있는 가운데서 참고한다면 더 많이 공부할 수 있고 더 많이 연구해야 한다고 봅니다. 00:27
글쓴이 글쓰기와 비평.. 맹목성과 개연적 두려움이 놀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00:29
글쓴이 그간 저의 글에 대한 여자적 해석으로 놀이를 하신 분들에 대한 저의 답변입니다.
http://geocities.com/vosscare
글쓴이
글쓰기라는 것에 대한 견해의 차이는 보편적으로 말한다면 문학과 철학이라고 함의 차이로서 말할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에서 공부하신 박이문교수의 문학과 철학이라는 것의 개념구분적 차이의 가능성에 대한 재고를 위한 글을 쓴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 문학과 철학이라고 함이 사상의 전달에 대한 회의적 개념의 동반으로 인해 재구성이라는 도구적 개념만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각주1)
이러한 것은 사실 비평이라고 함의 양식이라고 하는 것이 공허하고 아주 비윤리적 극단을 달리게 하며 기만적 요소를 위한 마키아벨리적 개념으로 자리매김되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요소는 말의 내용이라고 하는 것보다도 말의 표현 기법을 우선시하고 있는 것으로 이것은 실재의식이나 실제의식과 같은 것에 대한 개념을 배제한 자들의 기본적인 입장이며 학적으로는 니체의 계보를 잇고 있다고 할 수 있는 데리다와 그에 따른 미국의 예일학파의 영향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각주2)
앞서 비윤리적 개념이라고 함은 그 글을 쓰는 자의 실재의식이라고 함을 문학에서는 전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의 딜레마에서 임의적 자위의 '놀이'를 하고 있는데, 사실 철학적 글쓰기나 사상의 표현에 있어서는 그 글쓰는 자의 기준으로써의 실재와 그에 따른 실제의식이 있는데 그것을 무시하는 것으로써 비인격적인 비판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극단적이라고 할 때에 있어서는 그 글쓰는 자의 실재와 그에 따른 실제의식을 간과하는 가운데서 그 표현적 입장을 임의적으로 해석하고 자의적으로 재구성하여 말하는 소위 어떤이들의 '사료분석'이라는 표현들이 지나친 것으로 모자람에 이르는 비평으로 나타남을 말할 수 있겠습니다.
버틀란트 러셀도 자신을 비평할 때에 학식이 있고 걸맞는 사람이 비평해줄 것을 말한 것을 기억합니다. 그것은 모르고 간과하고 글쓴이에 대한 폄하에서 그 합리성에 대한 기본적 이해의 몰락을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그는 의식해서 말했던 것으로 해석되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암튼.. native에게 그 자신의 나라를 공부하라고 말함에 있어서, 순수한 입장의 표현이 되어질 수 있지만 대부분 비난적 개념의 폄하적 입장을 가지고 말한다고 하는 것은 앞서 말한 글쓰기와 비평에 대한 맹목적 신뢰나 또는 개념없는 막연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에 따른 어리석음의 표현일 것입니다.
글쓰기와 비평에서도 그러한 보편적인 인식의 경향이 어떤 것인가를 이해함이 글쓰는 사람의 인격이 되어질 것이고, 그러한 것을 알지 못하고 행하는 자들은 그러한 것을 가지고 기만하려고 하는 자들의 맹목적 추종자들로서 자기 기만적 추함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어리석음을 자초할 따름인 것입니다.
프랑스에서 한 문호 사르트르.. 그나라 국민들은 한때.. 사르트르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그러한 생각을 할 정도로 그를 신뢰했는데.. 사르트는 정작 그의 글쓰는 것에 있어서 글이 틀린다는 것에 대하여서 그렇게 신경쓰지 않고 그것을 고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글이 아니라 글의 내용이라고함을 말했음에 대하여서 프리드리히 빠제는 말하고 있음을 기억합니다. 그 문호의 인식을 지금도 계승하고 있는지의 여부는 여기서 가릴 것은 아니고 좀더 보편의식에 대한 개념도 없이 글쓰는 것으로 비난하는 어리석음은 피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각주1) 서양사에서 세 악동으로 불리고 있는 자들 중에서 프리드리히 니체의 허무주의적 개념의 발상은 현실을 위한 창조적인 개념으로 해석되어지고 있지만 그것은 니체에 대한 해석의 한 경향일뿐 그의 허무주의적 개념이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가운데서 있게 되어지는 모습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한 것의 경향은 글씀이라고 하는 것의 실제의식이 없는 가운데서 그 방법론적 개념으로서의 논리적 개념이 중요한 것으로 자리매김되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프랑스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것입니다. 그들의 정서는 실증주의적 개념이면서도 그 실증주의적 개념이 어떤 실재적 개념에서의 실증을 말하기에 부적절함을 인식한 나머지 방법의 실제성을 재구성하는 'How'의 입장을 상당히 중요시 하는 합리성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각주2) 데리다와 예일학파라고 하는 책을 볼 수 있고 그러한 가운데서 미국에서의 그 데리다의 인기라고 하는 것에 대하여서 프리드리히 빠제라는 사람은 그의 유쾌한 철학이라는 책에서 조소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꼬리말
글쓴이 반기련을 의식하고 글을 썼습니다. 그 만난 20대 30대 젊은이들의 입장이 날카롭고 보편적인 지식을 갖춘 것을 보면서 참 기본적인 학문적 입장을 취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남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비난하는 모습을 보고 실망이 들더군요.. 00:17
글쓴이 반기련에서는 저의 글에 대한 분석이라고 하는 것이 거의 대부분 글못쓴다고 하며 자신들이 저의 말을 재구성해놓고 웃고 있는 모습이 대부분입니다. 저의 대한 실재와 실제의식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한 가운데서 말입니다. 00:19
글쓴이 그리고 여러 나라 사상들을 읽고 생각할 때에는 그 이질성과 동일성 그리고 유사성과 인용함에 대한 가능성등을 생각해야 하는데 전혀 그러한 것없이 퍼오기도 하고 인용하기도 하는 것을 보면 참 답답함을 느낍니다. 00:20
글쓴이 인터넷의 영향으로 외국을 소개하거나 그곳에서 되어진 일들을 소개하는 각 기자들의 입장에서도 상당히 그러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개인적으로 유감이고 또.. 반기련의 몇몇 철학적 입장이 견고한 자들이 그렇지 못한 자들을 기만해서 글쓰기와 비평을 외곡하고 회원들을 기만하는 경향이 있는 것에 대하여서도 유감이군요 00:22
글쓴이 상대방이 얼마나 배웠는가 하는 학력에 대한 맹목적 판단으로 그의 말을 임의적으로 무시하는 소위 '너 얼마나 배웠어 배우지도 못한 것이 잘난척하네..'이런 입장에서 그 말하는 사람의 말을 맹목적으로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대학원정도 나오면 뭐 더 배울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00:24
글쓴이 불가지론을 넘지 못하는 한계상황에서 학력에 대한 화려한 메달리스트들의 꿈은 실제적이지 못하지요.. 그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그 맹목적 메달리스트들의 화려한 비평은 참 가증스럽기 짝이 없지요.. 00:26
글쓴이 아 개인적으로는 더 공부한 사람을 존중하고 배워야 한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맹목적인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지요.. 물론 불가지론을 넘을 수 있는 가운데서 참고한다면 더 많이 공부할 수 있고 더 많이 연구해야 한다고 봅니다. 00:27
글쓴이 글쓰기와 비평.. 맹목성과 개연적 두려움이 놀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00:29
글쓴이 그간 저의 글에 대한 여자적 해석으로 놀이를 하신 분들에 대한 저의 답변입니다.
http://geocities.com/vossc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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