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swers to antichristisms

화요일, 7월 08, 2014

is He selfish?, No.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 자존의 하나님의 행하심에 대하여서 그 정당함과 본래성과 모든 속성들 절대성과 같은 것을 취하심에 대하여서 사람들은 오해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기독교만 진리라고 하는 것은 이기적이다는 것입니다.

다원주의적 사회의 정황상 맞지 않다는 것과 어떤 객관적 근거지음이라는 지성의 행보라고 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폄하할 수 있는가 자기만 옳다고 할 수 있는가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상대적 다원성이라는 개념의 보편성도 절대적인 범주가 아니라는 사실, 그렇다면 그 보다 더 큰 범주적 개념에서 본다면 다원성적 재가를 받지 않는다는 측면 즉 상대적인 개념으로 비로소 해석되어지지 않는다고 비판이나 이어 비난으로 '이기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광대하심은 상대적 보편과 그에 따른 다원성이라는 개념보다도 더 크다는 사실에서 그러한 제한적다원성에서는 하나님을 판단할 수 없는 것입니다. 즉 '이기적이다'라는 언어적 묘사가 그 설득력과 정당성을 이미 잃어 버린 것이라는 것은 기억할 만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광대하심 하나님의 실존적 높으심은,-여기서 실존적이란 차용된 언어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인격의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여 사용된 것입니다 - 우리가 인식하는 다원성의 보편성에 비로소 판단을 받지 않으시면서도 그 언어들을 재가하실 수 있습니다. 제한적인 언어로도 자신을 나타내시길 기뻐하실 때에 그것을 한정적 범주인 다원적 범주에서 비로소 규정되는 언어 '이기적(selfish)' 임의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광대하심에 대한 것을 잘 나타낸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 '스스로 존재하시는 자'입니다. 야훼 하나님, 물론 그 해석에 따른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만. 납득 당위성을 스스로 가지고 있는 해석이 이 하나님의 이름 자존의 하나님이라는 해석임에 있어서 바르게 납득할 수 있는 이름의 증거입니다. 그리고 물론 다른 이름들도 이 해석적 관계에서 다시 재가되어질 수 있는 범위에서 해석해야 함이 옳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그 절대, 본질 본래, 기원 정당함 등등 모든 것을 스스로 취하심의 속성적 자기 계시를 말씀하심에 있어서는 상대적 범주들도 재가를 받아야 비로소 실재하는 것이지 논리적 앞섬이라는 개념으로 또는 제한된 보편성으로 하나님의 자기 계시로서의 하나님의 이름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이기적임, selfish?, 이것은 하나님께 적용되어질 수 없는, 판단할 수 있는 용어로 구별되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성의 정직함을 기억할 때에, 이런 언어는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말 조심하라는 것이 이런 의미에서 입니다.
 
 
 
 
 
 
is He selfish?
No, He is not!

금요일, 7월 04, 2014

답변 - 노예들의 종교 기독교에 대한 27가지 의문(3위일체=3명의 하나님들) 27가지 질문 반박 요청-

27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
 
비난이나 비판에 앞서
먼저 알아야 할 것
 
합리성의 납득 당위성, 정당성의 본래성에 대하여서 생각해 보았는가
합리성의 일관성과 굴절성에 대하여서 마음에 둔 적이 있는가
개인적 합리적 규정에 있어서 그 근거의 당위성을 비로소 말할 수 있는가
 
그리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교회의 역사를 통해
어떤 잘못된 인식을 해온 것을 참고해 보았는가
 
내가 질문한 것에 답변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에 합당한 답변을 할 수 있다면
아래의 질문은 다 살아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미 기각되어진 표현의 일관성과
그에 따른 천한 웃음과 비판이 글 쓰신 분의 몫이 된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덧붙이자면
저의 답변에 글을 보내온다면 본격적인 답변과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수행적 모순임을 인정하나.. 아래 질문들에 대해서 간단한 반문 정도로 답변하는 것도
글쓰신 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으로 보아 글을 씁니다.
 
 
 
 
 
 
 
 
 
 
 
 
 
 
신은 위대하지 않다.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들을 믿는가?
하기 27가지 질문에 반박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답변, ‘신은 위대하다라는 표어를 걸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즉 이슬람교도들의 입장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알라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에 대한 인식을 비로소 할 수 있는가, 개인적으로 또는 한 단체가 믿는 신이라고 하는 것의 신지식의 실재의 정당함은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하여서, 자존의 하나님의 자기 정당함을 취하심에 있어서 그 본래성도 스스로 취하시는 분이시기에 이런 상대적 측면에서 개연성에 따른 근거지음으로서 위대하지 않다는 자의적 판단의 규정을 받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문해 두는 것은 신에 대한 인식의 잘됨(well-defined)을 비로소 말할 수 있어야 그를 부인하거나 또는 판단할 수 있을 것인데, 상식보편에서의 범주에서는 그것의 현존재가 있을 수 있음에 대한 확신은 임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의 논고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말할 수 없는 것에 침묵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그의 자신의 저서에 대한 비판도 있었지만, 신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되지 않은 임의적 인식에서 임의적으로 위대하다 여부의 판단을 한다는 것 또는 이상하다는 표현들이 말하는 자의 어리석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1. 천국에 돌아간 예수는 지 아버지 밑에서 무얼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답변 : 그런데 앞서 우리가 신앙의 규범과 인식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천국과 그 곳에서의 삶이라고 하는 것 그리고 주님께서 계시다는 것의 의미는 우리가 다 설명하지 못한다고 하는 한계점에 있다고 하여도 그런 우리 신앙의 지식의 온전성이라는 개념은 자존의 하나님의 재가가 있는 가운데서 온전하고 참되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믿음의 분량의 차이가 있어도 인식의 분량의 차이가 있어도 모두 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죄를 선의 결핍으로 말하고 있는데, 그것보다 선의 차이라는 개념에서 해석적 차원으로 넘어가는 가운데 죄가 틈탈 수 있음으로 그가 이해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선의 차이라는 개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받으심이라고 할 때, 신앙인의 인식의 차이와 표현의 차이라는 것이 상대적 완벽이라는 개념의 판단을 비로소 받지 않으면서도 상대적 표현의 잘됨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재가에 따른 실존이해와 실존의 증거적 지식의 속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시거나 계시하신 부분이 아닌 것으로서의 묘사라는 개념은 그 재가되어진 합리성의 표현이 현존되어짐을 말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그것은 조소의 당위성을 세울 수는 없는 것입니다. 물론 조소할 수 있다고 하여도 그 조소의 당위성은 하나님의 재가를 받은 것을 비로소 판단할 수 없는 것입니다. 글쓴이는 할 수 있다는 개념의 당위성만 의지하는 가운데, 조소의 당위성과 그것의 잘됨과 납득 당위성이 유무를 판단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합리성과 판단의 오류를 범한 가운데서 말과 표현의 실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2.역사책 어디에도 기록된 적이없는 예수는 역사상 실존인물이 아니고
바울이 쓴 성경에만 나오는 가공인물입니다. 소설속 주인공입니다.
 
답변 : 옛날 영지주의자들은 나름대로의 그들의 신성을 위한 인성을 부인하는 경향으로 입장을 나타내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하였습니다. 물질적 실존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 배경에서 역사적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고, 어떤 정신이라는 개념을 잇는 것에 마음을 둘 수 있다는 측면에서 바울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이미 잘못된 판단으로서 이미 이단으로서의 실존적 판단을 굳이 이어갈 현대의 합리성의 한 표현이 지금 와서 재고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영지주의에 대한 비판을 할 수 있도 있겠지만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3.간질에 우울증을 앓았던 로마인 바울이 동시대를 살았던 예수를 한번도
만난 적이 없이 주변국들 신화들을 짜집기하여 19금 소설 성경을 썼다.
저주라는 단어가 3,000,죽임이란 단어가 2,700,성에 관한 이야기가
부지기수인 이 19금 소설을 개독들은 성스럽다고 합니다.
청소년들에게 이 소설 성경을 읽게 해서는 안됩니다.
 
답변 : 아주 잘 세뇌되어진 글쓴이의 모습을 봅니다. 19금의 성경이라^^, 아주 오래전 반기독교연합회, 반기련에서 그런 것을 주장하자는 운동이 있었습니다. 그 소산을 대변하시는 것 같습니다. 성경의 유기적 성격과 그 사역에 담당했던 종들의 신학이라는 것을 오해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스럽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 중심을 가지지 못하면 그 재가되어진 성스러움에 대한 인식을 오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의 다음 세대에 대한 폄하는 그런 세뇌되어진 자의 걱정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4.지구가 6,000년전에 만들어 졌다는등 황당하고 엉터리 내용이 성경에는
너무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신이 모순투성이들을 고쳐 마호메드에게 준
것이 꾸란입니다.
로마인들이 통치의 목적으로 성경내용들을 제멋대로 빼고.고치고,첨부
하고 4세기에는 예수를 신으로 만들었습니다.
 
답변 : 그래, 신은 위대하다는 말에서 언급했듯이 이슬람에서도 알라를 하나님이라고 말해서 기독교와 혼돈을 가져오는데, 더욱 어떤 지도자는 기독교의 하나님 야훼와 알라가 같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아주 심각한 표현과 할 말이 많습니다만, 그것에 대하여서든 다음 기회에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신인식의 차이점과 유사성에 대하여서 분별해서 질문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지구의 연대에 대해서는 현상적 개념으로 판단하기에는 그 근거지음이 납득 당위성을 말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현상과 물 자체.. 해석과 이해의 개념의 표현들의 차이인데, 그것도 실재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른 논쟁과 귀결을 말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다른 과학과 신앙의 논쟁에서 이야기 될 수 있는데,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납득 당위성을 생각하지 못하고 향방 없는 합리성의 표현만 무성한 관목들의 어지러움입니다. 하나님의 실재에 대한 지식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의 강요의 시작과 같이 말입니다.
 
기원전 4세기에 예수님의 탄생을 말하는 역사도 본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연대, 달력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서 벌어진 것인데, 그 연대는 그렇게 크게 중요하게 보여지지 않습니다. 시간 이해와 표시에 따른 착오라는 개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크게 의미를 두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증거를 인위적으로 교리화 하였다는 언급을 하고자 하는 것이 질문하신 자의 의도 하신 것인데, 인위적이라는 표현이 재가를 통과했을 때는 그 판단을 받을 수 없다는 것도 유념했다면 그런 경솔함의 치부를 드러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합리주의자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서 말하기 때문에 이어지는 어리석은 전통입니다.
 
 
참고
가톨릭신자는 왜 금요일에 물고기를 먹는가? -그리스도교의 전통과 일상-마이클 P. 폴리(Michael P. Poley) 보누스, (중세의 달력에 관한 이야기를 참고할 수 있습니다.)
 
 
 
 
 
5.로마군한테 강간당하여 5형제중 막내로 예수는 천하게 마굿간에서 태어났
다고 BBC documentary 예수의 형제편에서 방송한 적이 있읍니다.부모와
맏형 제임스를 비롯한 형들의 핍박과 멸시를 피해 거지소굴로 도망가 평생
부자들을 증오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답변 : BBC documentary 예수의 형제편의 그런 예수님에 대한 묘사도 역시 재구성이라는 개념에서 이미지화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의 잘됨이라는 것을 말할 수 있다면 합리성의 일관성을 유지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합리성의 굴절이라는 개념이 있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재가가 있는 것이라면 그 본래의 실존을 말하기에 합당함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임의적 상대적 합리성에 따른 재구성으로서의 그런 방송의 사실들에 너무 집착하는 것은 아닌지요, 한국에서는 텔레비전을 바보상자라고도 말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비판적 사고가 결여되어질 수 있는 합리성의 일관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소설이나 텔레비전도 분별해서 볼 수 있도록 함이 정신적 건강이 있을 것입니다.
 
 
 
6.개독 신의 job은 사람들을 저주하고 심판해서 죽이는 일입니다.이 쫌팽이
신은 까탈스럽고,잔인하고,질투가 많고,속이좁아,자기를 따르는 거지들
에게는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온갖 무시
무시한 저주와 협박을 하고 죽입니다. 사람들을 저주하고 심판하여 죽이러
다니느냐고 무지 바쁩니다. 사람들을 때만큼도 여기지 않고 오직 무조건
충성과 복종만을 강요합니다. 노예의 종교지요.
 
 
답변 : 우리가 판단할 때에 피해의식이나 가정에 대한 교육과 인식이 참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영어의 family라는 단어의 기원적 입장을 보면 하인이라는 말에서 나왔다고도 합니다. 거의 노예적 개념으로 이해되어질 수 있는 가족적 인식이 이미 영국 켈트족의 인식에도 있어 왔다는 것입니다. 가족의 사랑을 밖에서 본다면 노예 근성으로 보여질 수도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반적 지식이라는 개념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인간사적인 측면에서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씀하심을 폄하하는 것은 가정교육이나 가족이라는 개념의 인식이 재대로 되지 못한 것이라는 판단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재고해 보실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니체와 같은 사람들을 비롯하여 노예 신앙이라는 개념을 말하고 있는데,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자기의 신앙의 제단을 하나님께 물리는 그는 하나님의 뜻하심을 알 수 있다고 말하는 건방진 모습과 같이, 남의 집을 보면서 간섭 판단하는 사람들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신학을 한 분이라면 구약의 하나님 신약의 하나님을 구분하는 경향도 있는데, 사실 옛 이단인 마르시온의 신학적 입장이라는 것이 오늘날에도 이렇게 이어지고 있어 하나님을 잘못 증거하여 그 영광을 훼방하는 것의 기본이 됩니다. 옛 이단의 인식이 왜 피해의식이 있는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자들에게 있을까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서자의 고통이 아니겠습니까..
 
 
참고
엉덩이 까고 보는 고상한 영어, 티본스테이크 지음/ 김학수 그림, 열한 번째 행성, 위즈덤하우스. 티본스테이크, 런던대학 King's Collage 대학원에서 프로퍼 게더를 공부해 석사학위를 받고 현재 조선일보 기자로 활동하고 있음.
니체, 그의 생애와 사상과 전기, 리뒤거 자프란스키, 오윤희, 문예출판사
니체, 그의 삶과 철학, 레지날드 J.홀링데일(Reginald J. Hollingdale), 김기복, 이원진, 이제이북스
 
 
 
 
7.개독의 역사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합니다. 예수가 태어났을때 수많은 애기
들이 예수때문 살해되었다고 합니다. 애기부모들의 저주를 받으며 예수는
컸읍니다. 이런 저주의 역사가 시작되어 십자군전쟁,마녀사냥,중세 암흑
시대,노예무역,아프리카,남미 원주민 살육,유태인 살해,1,2차 세계대전등,
역사 자체가 살육과 파괴입니다.
 
답변 : 말은 바로 해야겠지요, 예수님 때문에 살해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잘못 이해한 헤롯의 정신분열적인 정치적 행보에 따른 것이지요, 그리고 그러한 정치적 도그마에 따라 피해의식을 가져야만했던 사람들이 님의 말과 같이 애기들의 부모가 되겠지요.. 그럼 잘 모르는 가운데서의 저주라는 개념이 기독교의 역사에 피비린내나는 것이라는 근거지음은 너무 님의 말과 같이 마녀사냥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히틀러가 독일 기독교를 어떻게 기만해서 또 가톨릭에 대한 연모가 어떻게 나타났는지에 대한 연구를 한다면 기독교 자체에 대한 잘못으로 기독교의 역사가 피를 부르는 것과 같이 이해되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좀더 분별할 수 있겠지요.. 좀더 잘 분석 비판하는 통찰이 필요하군요
 
 
 
 
8.왜 남의 나라에가 사람,동물들을 죽이고,그들 문화를 쑥대밭만드는지?
이런 개독들의 만행들을 신은 왜 가만히 두는지?
 
답변 : 전쟁과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것은 책으로 나온 여러 저자들의 견해들이 있으니 굳이 여기서 논하기에는 지면이 모자랄 것 같군요.. 기독교인의 만행이라는 개념에 앞서야 하는 것은 그가 진정한 기독교인이었는지에 대한 판단이 앞서야 할 것입니다. 히틀러는 가톨릭 주교를 속일 정도로 신앙적 입장을 취하면서 악을 행했던 예도 있다는 것을 기억할 때에 너무 단편적으로 표현하고 판단하는 것도 무리가 있을 것입니다.
 
악과 하나님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느냐 선한 하나님이 악을 어떻게 용인하느냐는 말도 있지만, 사실 상대적 선이라고 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고려하실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하나님 안에서 해석되어질 수 있는 실제로서의 선이라는 것이 상식적 선함과 우리의 삶에서 판단되어지는 선이라는 것과 동일시되어져야만 한다고 하나님께 강요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하나님의 뜻하심이라는 것이 현상적 이해의 요구와 필요성의 당위성에 매이지 않으시면서도 주의 뜻하심은 선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선하심이 오히려 상식적 실재로서의 선함을 규정하시고 우리의 일반적 인식의 선함이라고 하는 것을 더 충만하게 하신다는 것도 마음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행하심에 대한 것도 하나님의 주권적 판단에 속한 것으로 현상적 표현의 가능성이라는 것을 우리가 비록 찾지 못한다고 하여도 그것은 비난과 조소의 납득 당위성이 세워지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쉬운 말로 우리가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시는지 인식되어지지 못하고 표현할 수 없다고 하여도 합당하고 선하신 하나님께 선함의 본래성을 가지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참고
권력과 신앙 히틀러 정권과 기독교, 추태화, 씨코북스 Ckobooks,
교황의 역사 -베드로부터 베네딕토 16세까지- 호르스트 푸어만(Horst Fuhrmann), 차용구 길
 
 
 
9.2천년전에는 자주 나오던 개독의 신이 왜 요즈음에는 얼굴을 안 비치어 개 독들의 악행들을 막지않을까? 오히려 부추기고 즐기다가,심판해서 사람들
을 죽이려 하시나? 한번만 나타나면 모든 혼란들이 정리될텐데.
 
 
답변 : 그러게, 그것은 말씀하시는 사람의 견해이고, 그것의 판단을 받지 않으시는 자존의 하나님께서 그의 뜻하심에 신실하게 행하실 것이라는 점이 답변으로 가늠되어진다고 봅니다.
 
부언한다면, 구약의 하나님은 천사들을 통해서 또는 직접적으로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지만 현재의 하나님께서는 주의 보내신 성령께서 사람들의 생각과 중심에 생각나게 하심을 통해서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게 하시기 위함으로 보여지며 궁극적으로는 앞서 말한 대로 주의 뜻하심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주실 때는 마지막 때인 것으로 받을 수 있다고 봅니다.
 
 
 
 
10.유럽에 인구가 별로없었던 중세에 흑사병이 돌아 유럽인구의 절반이 죽
었다고 한다. 원인은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하다
가 전염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묵묵무답,무능한 신이 아직도 필요
한가?
 
답변 : 중세의 가톨릭에서는 그런 흑사병이 하나님께 잘못해서 일어난 것이라는 중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학하기도 하면서 신앙을 다잡기도 했다고 하는데, 들쥐에 따른 병의 원인이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이야기인데, 너무 임의적 표현으로 역사 인식이 부족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응답의 당위성을 하나님께 돌린다는 개념은 그야 말로 만들어진 신을 임의적으로 잘못 설정하고 필요에 따라 해석하려고 하는 그 잘못된 인식이 너무 글쓴이의 생각을 자의적으로 왜곡시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운 줄 모르고 마구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는 되지만 비웃음의 주체가 아니라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11.유럽,미국에서는 개독신이 이미 용도폐기되고 기독교는 사라져 가는데
왜 한국에서만 아직도 개독들이 발광을 할까? 투자가 별로 안들고 입만
갖고 하는 돈벌이가 좋은 Business이기때문이다.외국에 지사까지 내며
영업에 열씸이다. 허나,한국에서도 조만간 사그러 지겠지.
뇌가 필요없는 종교다.
 
답변 : 무신론을 너무 많아 접해서인지, 자기가 세뇌 되어진 것을 모르시는 군요.. 자기가 뇌가 없다고 다른 사람이 없다고 하는 일차원적 인간, 마르쿠제의 비판과 같이 무신론의 시장을 너무 맹신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서구에서의 신앙의 쇠퇴라는 말을 하고 있지만, 야벳의 창대와 셈족의 장막이라고 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질 수도 있는데, 질문의 범위적 차원에서 여기까지만 언급합니다.
 
 
 
 
 
12.기독교란?: 잔인한 신,엉터리 성경,피의 역사,종업원들의 타락
내이름을 부르면 몸속에 성령이 임한다고 하였는데,먹사,신부들의 범죄
행위는 이미 식상한 뉴스가 되었다.
 
답변 : 죄인들과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살리시는 하나님, 죄인들을 주장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행보, 그러한 것은 일상적 개념에서 볼 때에 많은 왜곡과 합리성의 덤불이 엉켜 있습니다. 그래서 식상해 보일 수 있습니다.
 
구원의 유무와 상관없지만 성도들의 실수와 잘못이 있거나 성도의 가면을 쓴 악한 자들의 계략적 모습이 있을 수 있다고 해서 그러한 식상한 뉴스라고 대충 보다가 날씨라고 주목하지 못한다면 아쉽지 않겠습니까? 인생의 날씨 그리고 주님 오실 때에 주님을 맞이할 때와 시기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 식상한 뉴스가 아쉬울 것입니다. 참 험악한 인생사 속에 평범의 모습 폄하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 가운데서 주의 진리와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도 사실임을 볼 수 있기를 말해 둡니다.
 
 
 
 
 
13.기독교의 신이란?: 만들어진 신,저주의 신,파괴의 신,죽음의 신,질투의 신
 
답변 : 그렇게 인식되어질 수도 있지요, 그런데 그것이 바른 인식일까요 .. 그렇게 말하고 싶을 뿐이겠지요.. 납득 당위성이 없이 받아들여진 것을 세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납득 당위성에 대한 본래성, 왜 그것을 처음부터 말한 것인지 아시겠나요..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 아닌지 옳은지 분별없이 받아들여서 마구 내놓은 모습 세뇌 된 자의 슬픔과 가벼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14.기독교도들이 그간 인류,동물,문화,환경등에 저지른 악행들을 보면 태어
나서는 안되는 종교였다.
 
답변 : 반복되는 표현, 이런 경우가 세뇌된 자의 횡설수설이 되지 않을까요, 악과 선이 공존할 수 있는가 선한 하나님께서 왜 가만 계시는가에 대한 질문과 답변은 앞서 언급되어진 것인데, 합리성의 흘림이란 이렇게 인격의 옷을 버리게 하는 경향이 있는 것입니다.
 
 
 
15.선교사들이 당시 세계3대 금 생산국이던 구한말에 한국에 와 한 짓은
금광개발하여 떼돈을 버는 일이었다.노다지(No touch)라는 말이 개독선교
사들 때문 생겼다.선교사들은 유럽제국주의자들의 간첩으로 제일 먼저 미
개지에 간 후 그나라문화를 파괴하고 사람들을 죽이는데 앞장섰다.선교사
들이 간 곳에는 곧 재앙이 시작된다.왜 순교를 못해 안달들일까?
 
답변 : 그런 하나님의 뜻하심을 행하는 자들이 나쁜 짓을 했다고 할 때에, 그것이 잘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악을 선하게 바꾸어주시는 가운데서 그 행하는 자의 의지나 악함의 판단을 받으시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그런 악함도 하나님의 뜻하심의 선교의 한 부분으로 나타나는 것의 허용하심에는 삶의 비유적 차원에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미끄러질 수밖에 없는 시편의 기자의 고백과 같이 그런 뜻하심을 읽게 하시는 것이라고 봅니다.
 
즉 바리새인들의 말하는 것은 듣고 그 행위는 따라하지 말라고 하심과 같은 맥락에서 선하심의 역사가 선교에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순교의 열정이라는 개념은 그 당시 신앙의 정체성에서 극적인 측면도 있었음은 이해되어질 수 있습니다. 하이데거가 강의를 한 종교적 삶의 현상학이라는 책에서 데살로니가 사람들의 신앙관에 좋게 볼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아주 실존적이었다는 측면이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이해할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 하이데거의 한 책을 언급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현재도 동일한 선하심을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천년에 대한 이해가 교회사 초기와 중세기와 현대에 많이 달랐다는 것만 말해두겠습니다.
 
 
참고
천년왕국, 로버트 지, 클라우스(Robert G. Clouse), 권호덕, 성광문화사
마르틴 하이데거, 종교적 삶의 현상학, 마르틴 하이데거, 김재철 번역 및 해제, 누멘
 
 
 
16.신은 6일동안 우주를 만들고 힘들어서 하루를 쉬었다지요?까칠하고 헉헉
대는 힘없는 노인내입니다. 겨우 이정도 밗에 못 만들고.
지구에만 생명체가 있기에는 이 우주가 너무 크지 않나요?
 
 
답변 :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혼돈에서 비롯되어진 표현으로 이해되어집니다. 물론 이해되어진다고 해도 납득 되어지는 것과는 다른 것이지만 말입니다. 인성을 부각시킴으로 신성을 부인한다는 개념은 예전에도 있어왔던 주제입니다. 신성과 인성의 신비를 다 풀도록 계시의 은총이 아직 주어지지 않았지만 분명한 것은 혼합되어지거나 종속되어질 수 없다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으로 재가되어진 것입니다. 힘없는 노친으로 말하는 것도 이단적 발상의 힘없는 이성 노친의 이야기 일 뿐입니다.
 
지구와 우주의 대비, 생명체, 중심 이라는 것은 중세에 갈릴레오나 기타 여러 사람들이 지동설과 같은 것을 말하고 있고 상당한 파장을 가져왔는데, 이것은 스토아철학의 자연신적 개념이라는 것이 우주라는 개념과 비교되어질 수 있다는 강박관념에 다른 협의된 이해의 사회적 파장으로 혼란이 있었는데, 사실 스토아적 신관이라는 개념이 필요에 따라 표현될 수도 있고 설명에 따라 채용되어졌을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 지구 중심적 입장을 취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것을 스토아적으로 말하지 않은 탈 중세적 개념 종교개혁적 시대인 오늘에서는 그런 판단이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둡니다.
 
그리고 크다는 개념이 하나님의 광대하심의 반영이라는 것을 기억할 때에 상대적인 개념에서 비로소 크고 작음과 평가절하적 개념의 지구를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중세의 철학이 스토아적 개념에서 그 중심을 이야기 했지만 본래는 하나님이 지목하셔서 만드신 것이라는 점에서 주의 구속하심의 역사의 중심이 지구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중심은 우주라기 보다는 지구라고 하는 것을 마음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에 따른 그 외의 문제들, 그 우주의 보편성과 그에 따른 많은 합리적인 이야기 외계인 문제나 그런 것들도 재가받지 못한 상상의 현실적 가능태의 고민적 현안으로 인식되어질 뿐입니다.
 
 
 
17.기독교의 목적은 죽어서 천당가는 것이다.천당가서 매일 매일의 일과는
뭘까? 매일 할렐루야 부르고 울부짖고,청소하고,스테이크먹나?
천당갈 수있다고 꼬시며 살아있는 사람들 별 짓거리들 다하게만드는 기독
교는 죽음을 갖고 장사를 하고 있다.
 
답변 : 그리스 신화를 너무 많이 본 것 같애... 그런 신화적 개념과 유사 비교하는 것이 재가 받을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임의적이라도 본래성을 말할 수 있는지 생각하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이러니 안티들이 뇌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 이후의 생활에 대하여서 상상 아래 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하심이 자기를 계시하실 때에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 그 실재와 그 이후의 삶의 진정성은 하나님의 실존적 재가에 따른 것으로 확실성을 가지는 것에 만족함이 옳은 것입니다. 표현되어질 수 없다고 증거되어질 수 없다고 그 증거의 내용이 조소의 납득 당위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말한 바입니다.
 
 
 
 
 
18.한국영화 "밀양"을 보았나? 내 자식을 죽인 살인자가 하나님을 믿어 죄를
사해받고 천당간다고 하는데 이런 개모순이 어디있나? 살아생전 온갖 죄를
지은 놈이 하나님을 영접하고 진심으로 회개하였다고 천당가서 행복하게
산다니. 개독들은 무뇌아들인가? 이런 모순에 의문도 들지않나?
 
답변 : 한때 밀양의 날씨가 아주 뜨거운 적이 있었죠.. ^^ 인간에게는 자범죄와 원죄가 다 있습니다. 자범죄만 사람들이 주목하는 경향이 있는데, 도덕주의자들은 아주 간과하고 싶어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인간적 도덕이라는 개념에서만 보면 그렇지요, 달리 볼 수 있는 시각에도 열려 있어야지 근시처럼 그것만 보이는 것은 참 안티의 초보자들로 안티 자신들을 욕보이는 것이 되지 않을까요.
 
온갖 죄도 다 용서를 받는다는 것은 변함없습니다. 그것이 자존의 하나님의 본래적 정당함의 재가가 있는 것이라면 인간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합리성의 당위성으로 무효나 비난을 말하기에 역부족이라는 것에도 눈이 열려지기길 바라겠습니다.
 
합리성의 정당성, 본래성의 실재를 먼저 말하자고 한 것을 기억하나요.. 합리성의 파편들을 쥐고 손 다치지 않기를, 유리하는 자 가인의 길을 걷지 않기를 바라겠습니다.
 
 
 
 
19.불경에 나오는 기적들이 성경에 왜 그리 많이 나오나? 중동지역까지 전파
된 불교 경전들을 copy하였기 때문이다.
 
 
답변 : 민희식씨의 저서들을 보면 아주 그런 것이 많이 나옵니다. 예수님 보다 붓다가 먼저 왔다는 것으로 시간적 개념에서 볼 때에 후대의 사람의 사상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 상식적 개념에서 이야기 될수 있다는 판단하에 유사 비교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이 다 도적이라고 말씀하심도 기억할 때에, 그 시간의 일반성에 따른 순서적 기득권이라는 개념으로 주장할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라는 것도 마음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즉 예수께서 시간의 보편성아래 현실 속에 오셨다고 해서 시간에 비로소 제한되어짐이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에서 예수님의 자존성이라는 신성적 개념은 시간의 보편성의 판단하에 비로소 있는 신성 왜곡된 신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시간을 창조하신 예수님으로서의 실존을 주목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간의 기득권적 사상의 전파와 전제에 따른 불교 경전의 우선성과 예수님의 가르침이 카피되었다는 주장이 가능한 것입니다. 가능한 것과 그 벌어진 또 재가되어진 것으로서의 현존이라는 것은 같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의 신성적 개념은 그런 카피적 개념의 가르침이 아니라 본래적 개념을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래성이라는 개념이 자존의 하나님의 원래적 취하심으로서의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왔다고 하는 자들이 기득권을 주장하려고 할 때에 그들은 도적이 되는 것입니다.
 
 
 
20.아담과 이브설화는 왜 6세기 성경에서부터 나오는가? 최초의 성경에는
아예 없었고.사람의 부모는 자기가 아끼는 사과를 먹었다고 자식들을 그리
매정하게 내쫓지는 않는다.개독신은 너그럽지 못하고 꼬장꼬장하고 까칠
하다.아이들에게 자신의 부모가 중요할까,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하나님이
중요할까? 개독들은 하나님 아버지가 더 중요하다고 쇄뇌한다.
 
답변 : 필요나 가치 철학이라는 개념이 비로소 현존재에 대한 기준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하여서 제대로 된 답변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니체의 도덕의 계보라든지 신은 죽었다는 개념에서 니힐리즘이라는 개념에서 다룬 가치관이라는 것에 긍정을 말하는 경향이 있고 치료까지 말하는 정신 없는 사람들도 있지만,
 
필요나 가치라는 개념이 현존재로서의 우리 인간에 대한 실존적 판단 기준으로서 본래성을 가지는가.. 그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할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우리 인생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재가를 주목하게 된다고 할 때에, 임의적 신의 죽음, 잘 인식되거나 바르게 알지 못하는 신의 죽음으로 가치의 부정과 새로운 가치의 형성의 노력들 그것이 과연 당연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도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글쓴이가 말한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하나님이란 표현은 성립될까 안될까.. 이런 성립되지 않는 질문으로 시작되어진 합리성의 진전으로 판단되어진 하나님이 더 중요하다고 임의적으로 세뇌한다고 또 말하는 자기를 세뇌하는 모습
 
즉 세뇌하는지 합당하게 말하는지 어떻게 하는지 그 불분명함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이런 이성들 안티들 부끄러운 줄 알고 이런 초딩들 말릴 수는 없는지..
 
핑계치 못할 복음이라는 것이 성경에 잘 번역되어진 것과 같이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때, 그 스스로의 속성적 개념은 본래성과 주권과 그 정당성 모든 속성들을 다 그야말로 본래적으로 가지신 분이라는 것을 안다면 상대적 합리성과 그 파생적 정당성이라는 개념이 이미 판단되었음을 왜 모르는지.. 그렇기에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더 앞선다는 것은 더 본질적이라는 것은 합리적으로도 합당한 것인데, 무슨 세뇌라고 우기고 있는지.. 참 바둑이 눈에는 그것만 보인다고 하더니 사변에서 모든 사변만 생각하니 말하는 자신의 실존이 외로울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선악과는 사과로 표현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바나나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정확한 것은 알려지지 않고 있고 다만 추측성인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에서의 거룩함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 언어적 측면의 분리적 개념에서의 카도쉬라는 거룩의 사람들의 인식을 차용하신 것으로 죄에 대한 것을 멀리하심을 그렇게 절대자로서의 분리적 개념을 취하심으로 사람들의 눈높이를 맞추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낮아지심이라는 것을 임의적 비하로 이해하는 경우 그런 분별없는 질문이 나오게 되는 것으로 봅니다.
 
 
 
 
 
 
21.개독신은 왜그리 사탄에게 휘둘리고 그깟 사탄을 제압하지 못하는걸까?
성경에는 예수가 내가 루시퍼다라고 말했다.루시퍼는 금성,즉 사탄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기가 사탄이라고 고백하였다. 예수 자신이 루시퍼라고
이야기한 것을 꼭 찿아 읽어 보기 바랍니다.
 
답변 : 이리 단순하기는... 못하는 것과 그리 하시지 않으시는 것과 분별을 좀 하시지,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 자존의 하나님께서 자기 표현을 자기 뜻하심 안에서 선택하셔서 제압하지 않으신 것을 해봐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이 시험 받으실 때에 뛰어내리라고 말한 사단의 말과 중심이 같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즉 그런 질문이 사단의 질문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부끄러워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예수가 내가 루시퍼다라고 말했다. 루시퍼는 금성, 즉 사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예수님이 자신이 광명한 새벽별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해석하는 번역본의 잘못 해석을 읽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언어라는 것도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뜻하심 안에서 구별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합리적 당위성을 맞추어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문자적 해석에서 유의해야 할 점입니다.
 
 
 
 
 
22.하나님들이 3(3위일체)이라면,마리아 배속에 들어간 하나님은 누구인
? 왜 하필 남의 부인 배속에 기어 들어갔을까? 이집트신화를 그대로 베
꼈기 때문이다.
 
답변 : 하나님에 대한 삼신론적 개념은 교회 초기에도 이단으로 취급되었던 사실입니다. 이것은 전통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합당한 전통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합리성이라는 것의 본래성과 그 본래성에 따른 가운데서의 합리성은 상대적 모순이라는 합리성적 판단에 비로소 판단을 받지 않으신다는 것을 기억할 때에 합리성만 추구하여서 삼신적 개념을 이야기 했던 초대 교회의 이단은 그 이단성이 지금에서도 확고해 재가 되어진다는 것을 말할 수 있게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라는 개념도 인간적 개념에서 빌어온 용어인데, 그것으로 비로소 하나님을 판단하는 용어적 표현은 적절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집트 신화든 그리스 신화든 시간에 따른 그 앞섬의 차이를 말할 수 있지만 이런 신화의 유사성이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든 사람들의 인식에 남아 있어서 신인식이라는 개념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니 어그러진 유사성의 맹그러진 신을 상상하게 된 것으로 그리 이상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사성만 가지고 말한다는 것은 일반은총으로 특별은총으로서의 계시를 판단한다는 것은 그 당연성의 실존을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세상 철학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과 같이 정당성의 본래성을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으로는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고 그리스도로는 모든 학문을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본회퍼도 동의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참고
선집 4, 그리스도론, 본 회퍼 (편집:한스 리카르트 로이터, 마르틴 쿠스케,일제 퇴트), 유석성, 대한기독교서회
 
 
  
 
 
23.예수가 커갈때 부모,형제,누구도 예수가 신이란 것을 왜 몰랐을까?
청소년기에 너무도 평범하였던 애가 사라졌다가 갑자기 29살에 고향에 오
더니 기적들을 행한다.그러더니 32살에 죽는다.
부활했다고 하는데 보았다는 사람들에 성경구절마다 다르다. 부활을 몇번
하였나?
 
답변 : 예수님의 유년기에 대하여서는 전 교황 베네딕토 16세 조셉 라칭어의 글도 있고 개신교적 차원에서는 폴 존슨이 예수 평전에서 예수님의 유년에 대한 언급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많은 것을 배우고 사역을 위해 준비되어진 모습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자의식이라는 것이 비로소 그 배움이라는 것에서 형성되어진 것은 아니지만 인성을 지닌 자로서의 낮아지심의 자기 계시로서 배움에 대한 유년 시절을 보낸 것으로 받을 수 있다고 봅니다.
 
위경이나 위경을 포함하고 있는 가톨릭 경전에서는 그 역본마다 그런 모호함을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성경에서는 한번 부활하신 것으로 가르침을 증거한다.
 
 
참고
나자렛 예수 유년기, 요제프 라칭거 베네딕토 16세 민남현 바오로딸
폴 존슨의 예수평전, 폴 존슨(Paul Johnson), 이종인, RHK(랜덤 코리아 하우스)
 
 
 
 
24.기독교는 아직까지도 이단과의 싸움중이다. 왜 그리 파벌과 이단이
많을까? 성경 내용들이 엉망이라 서로 자기 해석이 맞다고 박터지게 싸우
고 있다. 끝이 없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이단이 생기도 있다.
 
 
답변 : 아브라함에게 내 자손이 바닷가 모래와 같이 많아 질 것이라고 하신 것과 같이 여러 교파가 있을 수 있고, 그러면서도 성경과 언약이라는 동일한 보편성에서 하나가 되어짐을 기억해야한다.
 
종교개혁 사상 중에 교회관은 가톨릭은 잘 정비되어진 자기들의 교회가 보편 교회 자체이다는 측면의 가톨릭이란 말을 쓰고 있지만 종교개혁자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의 총체적 모임으로서의 교회를 보편교회라고 보았다. 그리고 그 보편교회의 표현이 눈에 보이는 개교회적 가견교회를 전투 교회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가톨릭은 자기들의 조직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즉 자기들의 교회가 보편교회 자체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눈으로 볼 수 있는 교회는 보편교회 자체일 수는 없다. 즉 주의 택한 백성들의 지체로서의 한 가견교회들일 뿐인 것이다.
 
전체 택한 백성의 보편교회가 볼 수 있는 가견교회의 모습과 그 안에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교회를 세우는 하나의 노력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가견교회 전투교회라는 표현은 세상적으로 볼 때에는 파벌과 그에 따르는 이단으로 비쳐질 수 있다. 그 모래알 같아 보여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주의 말씀대로 가르치고 섬길 때에, 교회로 받을 수 있다. 그런 가운데서 배를 위하는 자들 예수님을 말하면서도 결국 어떤 교주를 말하거나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단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해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하심과 같이 교회 역사를 통해서 이단의 행보라고 하는 것이 현대에 모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앞서 지적한 것과 같이 그대로 이어지는 나름의 전통을 밟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성경과 그 신학적 관점에서 주의 택한 백성의 총체로서의 보편교회의 현실적 가견교회 전투교회의 모습으로 세상에 증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본다.
 
보편교회에 대한 이해가 가톨릭과 종교개혁 이후의 기독교의 교회관의 차이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고 두 입장의 차이에서 비난을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분별이 요구되어지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25.왜 유대인들은 예수를 신으로 인정하지 않고 기독교를 사이비로 여길까?
 
답변 : 예수님의 신성을 알지 못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삼위일체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서기 85년쯤에 유대교 회당에서 암송되는 열여덟 개의 축복기원문 중 12번째에 나사렛 사람들(기독교인들)과 이단들이 생명책에서 신속하게 제거되기를 기도하나이다라는 말을 하여 유대교는 기독교를 이단으로 공식화 했음
 
요즘 샌더스를 비롯하여 기독교와 유대교의 상관성과 연관성과 심지어 그 뿌리를 말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을 의식해서 기독교를 사이비라고 말하는 것이 가능한데, 그런 자유주의자들은 시간관이란 연속성으로서 비로소 역사를 해석하는 가운데 자존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의 관계를 일방적으로 혼합시키거나 비하시키는 가운데서 그들의 학문적 설정은 진리를 비로소 말할 수 있는 재가라는 개념은 없다는 것을 말해둔다.
 
 
 
 
 
26.왜 한국에서만 기독교가 잘 전파되었을까? 6.25전쟁시 너무 어렵고 배고
플때,백인들인 미군들이 갖고온 종교였기때문이다. 미군들처럼 잘먹고 싶
어 개독교를 믿었는데 오히려 이제는 미국이 배고프게 되었다. 아직도 한국
교회는 아이들을 꼬실때 사탕주고,과자뿌리고,우유마시게 한다.
백인들이 믿는 종교였기에 열광하였는데,백인들은 지구에게는 암적인
존재였다. 수많은 악행들,육식문화,환경파괴,대규모 전쟁등등 암과 같다.
 
답변 : 문화와 선교의 상관성과 아이러니에 대해서 재고할 수 있을 때, 그 문화의 종속성이냐 아니면 발전적 이론이냐 하는 것에 대해서는 (각주 제3세계론)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삶의 긍정적 입장에서 발전적 이론적 입장을 취하기도 하는데, 종속적 입장이라는 비판도 있게 됩니다.
 
선교가 우리나라와 같이 제3세계에서 이루어질 때에 미국과 우리 한국에 대한 이해 관계도 유사하게 논쟁이 되어질 수 있고, 기억될 만한 여러 변화와 이해관계에 따른 확고한 비판적 여지가 있다고 하는 것도 부분 인정되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으나 긍정적 차원에서 발전적 차원에서 해석하여 앞서 구별하여 받을 수 있는 한국 선교 역사의 모습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오해되어질 수 있는 아이들의 눈높이 접근이라는 것이 부정적인 측면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그때의 특이 상황, 즉 전시 상태라는 것에 있어서는 아이들의 눈높이를 말할 때에는 아주 형편없는 수준으로 이해되어지고 부끄러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선교의 뜻하심이 선하게 나타날 수 있었음을 구별하여 말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인종차별적 개념에서 비판하시는데, 사실 그런 점을 말함에 의식하지 않았다고 해도 영향이 있었을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인종적 개념이 신앙적 개념에 크게 자리매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 존경하는 히포의 감독 어거스틴도 베르베르인의 후손으로 흑인이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에서도 그런 인종차별적 개념으로 접근하지 않는데,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 그런 상상적 개념의 근거로 인종차별적 접근을 하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개념에서는 아니라는 것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
3세계론 자유주의와 급진주의-, 신정현, 일신사
아우구스티누스 & 아퀴나스 -신앙과 이성 사이에서- 신재식 김영사
 
 
 
 
27.왜 흑인,백인,동양인을 따로 만드셨지? 자기는 흑인이었겠지. 최초의
인류는 흑인이었다닌깐. 흑인들은 왜 만들어 천덕꾸러기 인생을 살게하
였지? 왜 예수는 장발의 이탈리아 백인 모습으로 그려질까?
사실은 갈라리아의 시커먼 촌 놈인데.
 
답변 : 문명의 흐름을 보면 에게해에서 신화가 탄생하고 상륙하게 되는데, 문화의 발생도 그와 같은 경로를 따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럽 문명의 이집트 문명이라는 것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사를 다룸에 있어서 여러 학자들은 모세가 이집트인이었다는 개념으로 접근하여 학문적 개념에서 이스라엘 민족신을 재구성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재구성이라는 개념은 기억사라는 개념에서 역사성이라는 개념과 일치하기 힘든, 어려운 역사관을 따른 사변적 논의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 인류 문명의 최초를 흑인으로 주장이 가능하게 보여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 학문적 배경이 사변이라는 개념에서 계시사와 비교한다는 것이 그 당위성은 개연성에 지나지 않습니다.
 
최초의 인류가 흑인이었다는 개념도 사변에서 나온 것이나 괜히 임의적 주장이 되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지적해두고, 인종의 차이를 왜 내셨는가 이런 질문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대한 해명이 필요한데, 그 해명을 요구하고 불만을 청구할 수 있는 권한과 당위성이 이미 성립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그 질문이 기각되어지는 범주에서 머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증거적 표현을 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창조에 대한 인식과 믿음은 재가에 따른 합당함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둡니다. 앞서 말한 합리성의 존재적 본래성과 정당성이 이미 스스로 존재하시는 자존의 하나님께 있음이 합당하기 때문입니다.
 
 
 
참고
이집트인 모세 -서구 유일신교에 새겨진 이집트의 기억-, 얀 아스만, 변학수, 그린비
 
 
 
 
 
 
 
 
 
 
 
 
 
 
 
 
 
 
 
 
 
 
 
 
 
 
 
 
 
 
 
 
 
 
 
 
 
 
내게 보내온 메일 전문 이하


노예들의 종교 기독교에 대한 27가지 의문(3위일체=3명의 하나님들)


by ohiomo.......@gmail.com

 
 
신은 위대하지 않다.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들을 믿는가?
하기 27가지 질문에 반박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천국에 돌아간 예수는 지 아버지 밑에서 무얼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2.역사책 어디에도 기록된 적이없는 예수는 역사상 실존인물이 아니고
바울이 쓴 성경에만 나오는 가공인물입니다. 소설속 주인공입니다.
3.간질에 우울증을 앓았던 로마인 바울이 동시대를 살았던 예수를 한번도
만난 적이 없이 주변국들 신화들을 짜집기하여 19금 소설 성경을 썼다.
저주라는 단어가 3,000,죽임이란 단어가 2,700,성에 관한 이야기가
부지기수인 이 19금 소설을 개독들은 성스럽다고 합니다.
청소년들에게 이 소설 성경을 읽게 해서는 안됩니다.
4.지구가 6,000년전에 만들어 졌다는등 황당하고 엉터리 내용이 성경에는
너무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신이 모순투성이들을 고쳐 마호메드에게 준
것이 꾸란입니다.
로마인들이 통치의 목적으로 성경내용들을 제멋대로 빼고.고치고,첨부
하고 4세기에는 예수를 신으로 만들었읍니다.
5.로마군한테 강간당하여 5형제중 막내로 예수는 천하게 마굿간에서 태어났
다고 BBC documentary 예수의 형제편에서 방송한 적이 있읍니다.부모와
맏형 제임스를 비롯한 형들의 핍박과 멸시를 피해 거지소굴로 도망가 평생
부자들을 증오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6.개독 신의 job은 사람들을 저주하고 심판해서 죽이는 일입니다.이 쫌팽이
신은 까탈스럽고,잔인하고,질투가 많고,속이좁아,자기를 따르는 거지들
에게는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온갖 무시
무시한 저주와 협박을 하고 죽입니다. 사람들을 저주하고 심판하여 죽이러
다니느냐고 무지 바쁩니다. 사람들을 때만큼도 여기지 않고 오직 무조건
충성과 복종만을 강요합니다. 노예의 종교지요.
7.개독의 역사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합니다. 예수가 태어났을때 수많은 애기
들이 예수때문 살해되었다고 합니다. 애기부모들의 저주를 받으며 예수는
컸읍니다. 이런 저주의 역사가 시작되어 십자군전쟁,마녀사냥,중세 암흑
시대,노예무역,아프리카,남미 원주민 살육,유태인 살해,1,2차 세계대전등,
역사 자체가 살육과 파괴입니다.
8.왜 남의 나라에가 사람,동물들을 죽이고,그들 문화를 쑥대밭만드는지?
이런 개독들의 만행들을 신은 왜 가만히 두는지?
9.2천년전에는 자주 나오던 개독의 신이 왜 요즈음에는 얼굴을 안 비치어 개 독들의 악행들을 막지않을까? 오히려 부추기고 즐기다가,심판해서 사람들
을 죽이려 하시나? 한번만 나타나면 모든 혼란들이 정리될텐데.
10.유럽에 인구가 별로없었던 중세에 흑사병이 돌아 유럽인구의 절반이 죽
었다고 한다. 원인은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하다
가 전염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묵묵무답,무능한 신이 아직도 필요
한가?
11.유럽,미국에서는 개독신이 이미 용도폐기되고 기독교는 사라져 가는데
왜 한국에서만 아직도 개독들이 발광을 할까? 투자가 별로 안들고 입만
갖고 하는 돈벌이가 좋은 Business이기때문이다.외국에 지사까지 내며
영업에 열씸이다. 허나,한국에서도 조만간 사그러 지겠지.
뇌가 필요없는 종교다.
12.기독교란?: 잔인한 신,엉터리 성경,피의 역사,종업원들의 타락
내이름을 부르면 몸속에 성령이 임한다고 하였는데,먹사,신부들의 범죄
행위는 이미 식상한 뉴스가 되었다.
13.기독교의 신이란?: 만들어진 신,저주의 신,파괴의 신,죽음의 신,질투의 신
14.기독교도들이 그간 인류,동물,문화,환경등에 저지른 악행들을 보면 태어
나서는 안되는 종교였다.
15.선교사들이 당시 세계3대 금 생산국이던 구한말에 한국에 와 한 짓은
금광개발하여 떼돈을 버는 일이었다.노다지(No touch)라는 말이 개독선교
사들 때문 생겼다.선교사들은 유럽제국주의자들의 간첩으로 제일 먼저 미
개지에 간 후 그나라문화를 파괴하고 사람들을 죽이는데 앞장섰다.선교사
들이 간 곳에는 곧 재앙이 시작된다.왜 순교를 못해 안달들일까?
16.신은 6일동안 우주를 만들고 힘들어서 하루를 쉬었다지요?까칠하고 헉헉
대는 힘없는 노인내입니다. 겨우 이정도 밗에 못 만들고.
지구에만 생명체가 있기에는 이 우주가 너무 크지 않나요?
17.기독교의 목적은 죽어서 천당가는 것이다.천당가서 매일 매일의 일과는
뭘까? 매일 할렐루야 부르고 울부짖고,청소하고,스테이크먹나?
천당갈 수있다고 꼬시며 살아있는 사람들 별 짓거리들 다하게만드는 기독
교는 죽음을 갖고 장사를 하고 있다.
18.한국영화 "밀양"을 보았나? 내 자식을 죽인 살인자가 하나님을 믿어 죄를
사해받고 천당간다고 하는데 이런 개모순이 어디있나? 살아생전 온갖 죄를
지은 놈이 하나님을 영접하고 진심으로 회개하였다고 천당가서 행복하게
산다니. 개독들은 무뇌아들인가? 이런 모순에 의문도 들지않나?
19.불경에 나오는 기적들이 성경에 왜 그리 많이 나오나? 중동지역까지 전파
된 불교 경전들을 copy하였기 때문이다.
20.아담과 이브설화는 왜 6세기 성경에서부터 나오는가? 최초의 성경에는
아예 없었고.사람의 부모는 자기가 아끼는 사과를 먹었다고 자식들을 그리
매정하게 내쫓지는 않는다.개독신은 너그럽지 못하고 꼬장꼬장하고 까칠
하다.아이들에게 자신의 부모가 중요할까,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하나님이
중요할까? 개독들은 하나님 아버지가 더 중요하다고 쇄뇌한다.
21.개독신은 왜그리 사탄에게 휘둘리고 그깟 사탄을 제압하지 못하는걸까?
성경에는 예수가 내가 루시퍼다라고 말했다.루시퍼는 금성,즉 사탄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기가 사탄이라고 고백하였다. 예수 자신이 루시퍼라고
이야기한 것을 꼭 찿아 읽어 보기 바랍니다.
22.하나님들이 3(3위일체)이라면,마리아 배속에 들어간 하나님은 누구인
? 왜 하필 남의 부인 배속에 기어 들어갔을까? 이집트신화를 그대로 베
꼈기 때문이다.
23.예수가 커갈때 부모,형제,누구도 예수가 신이란 것을 왜 몰랐을까?
청소년기에 너무도 평범하였던 애가 사라졌다가 갑자기 29살에 고향에 오
더니 기적들을 행한다.그러더니 32살에 죽는다.
부활했다고 하는데 보았다는 사람들에 성경구절마다 다르다. 부활을 몇번
하였나?
24.기독교는 아직까지도 이단과의 싸움중이다. 왜 그리 파벌과 이단이
많을까? 성경 내용들이 엉망이라 서로 자기 해석이 맞다고 박터지게 싸우
고 있다. 끝이 없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이단이 생기도 있다.
25.왜 유대인들은 예수를 신으로 인정하지 않고 기독교를 사이비로 여길까?
26.왜 한국에서만 기독교가 잘 전파되었을까? 6.25전쟁시 너무 어렵고 배고
플때,백인들인 미군들이 갖고온 종교였기때문이다. 미군들처럼 잘먹고 싶
어 개독교를 믿었는데 오히려 이제는 미국이 배고프게 되었다. 아직도 한국
교회는 아이들을 꼬실때 사탕주고,과자뿌리고,우유마시게 한다.
백인들이 믿는 종교였기에 열광하였는데,백인들은 지구에게는 암적인
존재였다. 수많은 악행들,육식문화,환경파괴,대규모 전쟁등등 암과 같다.
27.왜 흑인,백인,동양인을 따로 만드셨지? 자기는 흑인이었겠지. 최초의
인류는 흑인이었다닌깐. 흑인들은 왜 만들어 천덕꾸러기 인생을 살게하
였지? 왜 예수는 장발의 이탈리아 백인 모습으로 그려질까?
사실은 갈라리아의 시커먼 촌 놈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