샨티님과 보편에 대한 대화... 철학과 신학의 보편논쟁
글소개
comments:
1. 다음 예수그리스도 향기까페에서 대화한 내용입니다. 주로 저와 꼬리말로 답변하였음을 참고해주세요
2. 해설 : 마지막 대화가 자존의 절대자의 자기 정당함에서 일방성을 가진다는 것과 또한 자체적 절대 정당함을 가진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가운데서 인드라님은 대화의 원점인 것같이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것은 상대적인 합리성이라는 개념을 절대화 하려는 가운데서 입장을 실제적으로 말씀하시고 싶어하는 것으로 이미 부정되어진 것의 확인되어짐을 인정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이명신님의 글에 글을 달수없군요
번호:3494 글쓴이: 샨티
조회:89 날짜:2004/01/29 18:24
.. 인용은 그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이지요..그것조차 비난해서야 되겠습니까?..게다가 어거스틴외에도 그러한 견지를 가진자는 무수히 많습니다...저는 오히려 그가 빼끼었다고 생각합니다...ㅡㅡㅋㅋ...
꼬리말 쓰기
샨티 왜 죄가 그토록 진지한 토론의 대상이 될수있는가는 그위에 교리가 자리잡고있기 때문입니다..더러는 거짓이라고 생각하면 어떤이는 왜곡이라말하고 어떤이는 지당하다고 하죠..중요한 토론주제입니다 [2004/01/29]
샨티 가능하다면 명신님의 의견을 듣고싶습니다..다만 소모성글은 좀 그렇군요...죄나 악은 어떻것이며 왜 생기며 어떤작용을 하고 어떤영향을 미치는가?...그것이 개신교의 교리와는 어떤관계가 있는가..등등 아주 풍부한재료라고 생각합니다 [2004/01/29]
이명신
풍부한 것과 실제적인 것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실제적이지 않다면 그것은 님의 말과 같이 소모성의 글장난에 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2004/01/29]
샨티 네...실제적이란 기준은 단하나겠죠?... [2004/01/29]
샨티 전 오히려 그것이 한계라고 생각하는데요...님의 말씀따나 상당히 주관적이라는것이겠죠...추측으로 미리 결론을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만...이런 취지라고 이해해주심 좋겠군요...양이 모이면 질의 변화를 가져온다... [2004/01/29]
샨티 진리라면 어떠한 방면으로 접근해도 진리의 결과에 도달하는것에 무리가 없을겁니다...우리는 다양한 의견으로 접근함으로써 죄와악이란 문제를 좀더 자세히 알게 될것이며 종교적 진리를 만나는 즐거움과 놀라움 은혜를 만날수도 있겠지요...물론 샨티는 그기에 제동을 걸어나가겠지만 말입니다...^^;;; [2004/01/29]
샨티 자 명신님 참여해주셨으니...질문드립니다...악이란 무엇일까요?..악의 실체가 있어서 우리가 악을 인지할까요? [2004/01/29]
이명신
절대란 둘이 아니겠지요..^^ [2004/01/29]
샨티 무슨뜻인지 보충설명 부탁드릴께요...토론은 상대방의 지식수준을 고려하셔서하심이 그배려가 될것입니다... [2004/01/29]
이명신
보충이 아니라 본 논의가 시작되어진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음을 말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님의 지적수준은 저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말 그대로 절대라는 개념이 둘이냐고 물었습니다. [2004/01/29]
샨티 아니겠죠..적어도 우리의 관념에 존재하는 절대란 개념은 둘이 아닙니다..동의합니다 [2004/01/29]
이명신
그러면 절대의 실재는 하나뿐이라는 개념도 인정하셔야 하는 당위성이 있군요.. 물론 관념이라고 하는 틀의 범주 안에서 사멸되어지는 그러한 인공적 절대를 말하는 것은 아니구요.. [2004/01/29]
샨티 그것은 곤란합니다..님이 말씀하신 두그절중 전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후자는 아직 확인이 안되었습니다..적어도 보편적인 입장에서는요... [2004/01/29]
이명신
좋습니다. 그럼 질문이 될 수 있는 것은 무한의 상대성에 대하여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2004/01/29]
샨티 무한의 상대성이라니요..시간에대해서도 절대적의미를 부여하는것입니까? [2004/01/29]
샨티 샨티가 지식이 부족하나 봅니다...그러한 용어는 들어본적이 없군요... [2004/01/29]
이명신
예를 들어 말한다면, 자연수의 집합은 정수에 포함되면서도 자연수의 집합은 무한집합입니다. 무한이면서도 상대적 한정적 의미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2004/01/29]
이명신
제가 자연수라는 개념의 상대적 무한을 말하는 것은 경우의 수나 운동으로 나타낼 수 있고 인식되어지는 시간이라고 함도 역시 한정적 무한으로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004/01/29]
이명신
이러한 상대적 무한과 절대의 무한이라고 하는 개념이 동일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일반적으로 무한이라는 개념이 절대의 무한과 동일시 되어진다는 분별을 하지 못한 철학적 입장들의 딜레마를 종종 봅니다. [2004/01/29]
샨티 동의합니다... [2004/01/29]
샨티 그러나 말입니다...무한의 상대성을 인정하는것은 무한을 인식함에있어서 부분을 취하는 결과이지 그것이 어떠한 실체가 있다거나 그자체가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것은 아니라고봅니다..또한 절대의 무한도 마찬가지입니다..그래서 둘은 다르지않다고 말씀드릴수있겠습니다 [2004/01/29]
샨티 절대의 무한이라는 관념에 어떠한 인식을 할수있습니까?..전 전혀 할수없습니다..솔직한 이야기입니다 [2004/01/29]
샨티 둘사이에 어떠한 차이점이있는지 이해가 안됩니다...용어적한정적인 의미에서는 이해가 됩니다만..그것이 본질적 차이를 가진다는 말씀이신것 같은 데..그점은 이해가 안되고 있습니다 [2004/01/29]
샨티 일단 논제와의 연관성을 되도록 빨리 정리해주셨으면 합니다...그리고 전체적으로 말씀해주시고 이야기를 전개하지요? [2004/01/29]
이명신
제가 말하는 것은 님의 그러한 판단은 상대적 보편일뿐 절대의 보편이라고 함의 실재를 의지하지 않고 또한 그를 판단하지 못한다고 임의로 말하고 있습니다. 임의가 아니라면 님의 말의 실제적 확실성을 절대적으로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상대적 여지는 남겨야 하겠지요.. [2004/01/29]
이명신
한마디로 님의 합리성이 있음을 말함에 일리가 있으나 그러한 것은 그 개연성일뿐 실제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즉 님이 표현한 무한인식의 부분이라고 함과 절대의 무한도 마찬가지라는 개념은 성립이 안되지요.. 마찬가지라는 개념은 상식보편의 임의적 개념이지 절대적이지 않지요.. [2004/01/29]
이명신
맞습니다. 상대적 무한과 절대의 무한은 본질적 차이가 있음과 그럼에도 연속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절대의 의지 때문이지요.. 신의 의지.. 절대자가 아니면 진정한 신이 아니니까.. [2004/01/29]
샨티 무슨말씀이십니까?...샨티해석: 샨티는 상대적입장에서 이야기함으로 절대적인 인식을 모른다고 함부로 이야기한다..함부로 이야기하는게 아니라면 상대적입장이 진리라고 확증해야할것이며 절대적인 인식의 가능성을 염두에두라.......라고 받아들여도 됩니까?...근데 말이 너무어렵군요..ㅡㅡ;; [2004/01/29]
이명신
님이 상대적 무한과 절대 무한의 불 연속성과 연속성에 대한 이해를 분명히 하셨으면 합니다. [2004/01/29]
샨티 절대적개념을 님은 획득하셨나 보군요...일단 엄어가도록 하지요..그런데 그것이 죄와 악의 근원을 밝히는데 어떠한 연관성이있다는 이야기입니까? [2004/01/29]
샨티 연속과 불연속에 대해서 저는 전혀 인식할수없습니다..이것은 사실입니다 [2004/01/29]
이명신
앞선 말에 저의 입장을 전부 말한 것이기에 이해가 어려우셨을 것입니다. 저의 표현의 난해함도 있지만.. 앞서 말씀드린 상대적 무한이라는 것과 절대 무한의 불연속성과 연속성을 먼저 이해하심이 범주적인 의미와 한정적 의미의 사상적인 표현을 이해하실 수 있다고 봅니다. [2004/01/29]
이명신
감사합니다.. 저의 표현을 이해하시려고 노력하시는 가운데서 겸손히 말씀해주셔서.. [2004/01/29]
샨티 예를들어주심 이해가 될수도있겠군요...그러나 논제와 어떤연관을 가지는지에 대해서 먼저듣고싶습니다 [2004/01/29]
이명신
연속성이라고 하는 것은 합리적 연속성을 말할 수 있고 불 연속성이라고 하는 것은 비합리성을 말합니다. 이것은 인식이라고 하는 것이 시간의 연속성과 관련되어진 것이기에 시간이 숫자적 개념으로 표현된다면 자연수의 집합과 정수의 집합이 연속성과 불연속성이 있는 것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2004/01/29]
이명신
즉 사상의 연속성과 비연속성이라고 함을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에서는 러셀과 같은 입장에서는 범주에 대하여서 자신이 없어 합니다. 그러한 영향력이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분별을 하지 않는 가운데 딜레마를 남겨두었지요.. [2004/01/29]
샨티 범주라면 상당히 다의적인 용어입니다 ..토론에있어서는 자신의 용어를 사용함에 특정적인 의도가 있다면 먼저 밝히는것이 예의 입니다 [2004/01/29]
샨티 연속과 비연속에대한 말씀은 접수가 되었습니다..그러나 그것또한 실체가있는것이 아닌 관념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는가에대한 방법론적인 것일뿐입니다...예를들어 정수의 진행이있다면 연속적이라 이해가 될것입니다..그러나 비연속성의 진행이있다면 우리는 인식하지못할것입니다.. [2004/01/29]
샨티 그러나 그것은 숫자적인 진행의 모습이 연속비연속이라해도 숫자라는 관념자체가 달라지지는 않습니다..그러한 말씀을 하시는것을 보니 그기에는 어떠한것을 설명하기 위한 의도가 있어보입니다..그의도를 담백하게 말씀하시지요? [2004/01/29]
샨티 신이 절대적인 존재라면 상대적인 인간의 존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요?...관념은 그러한 딜레마를 끝없이 생산합니다...진리와 진실은 단순한것이라 생각됩니다..죄와 악에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저 밤을 세울수는없지않겠습니까? [2004/01/29]
샨티 그리고 님께서 계속사용하시는 실제라는 용어또한 한정해주셨으면 합니다.. [2004/01/29]
이명신
범주라고 하면 다의적 언어로 말할 수 있지요.. 하지만 기본적인 입장에서 사용함에 그 실제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임의적이라고 하여도 상대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 대화하면서 분명해질 것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2004/01/29]
샨티 님의 요지를 먼저 성급하게 정리해봅니다..실제라는것...우리가 경험하고 인식하는 것의 기준은 하나이다..그것은 절대자의 의지이며 죄와악이란것또한 그의 의지에 기인한다?..대충맞습니까? [2004/01/29]
이명신
그리고 인식의 방법론이라는 개념이 인식의 동의 하에서 실존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임의로 부정할 수 있다는 것이 항상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음은 주장할 수 없는 것이 상식보편적 입장이라고 함에 충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04/01/29]
이명신
숫자의 모델이라고 함은 우리가 인식이라고 함이 시간의 보편성 안에서 규정되어진다는 것은 서양철학에서 거의 정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물론 불교나 동양철학에서 시간관에서는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 시간인식 하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은 수라는 개념을 의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004/01/29]
샨티 해석:..ㅡㅡ;;...실존적인식방법은 그나름의 의미는 인정되나 실체적인인식방법을 넘어서는것은 아니다?...맞습니까?...ㅡㅡ;;;;;; [2004/01/29]
이명신
신이 절대자라고 함에 대하여서 이의를 제기하셨는데 그 이의의 실제적인 근거는 없이 주관적 의미에서는 규정할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함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상대적 보편에서는 어떤 것을 강조한다는 것은 지나칠 수 있다는 자체적 딜레마가 있으니까요.. [2004/01/29]
샨티 동양과 서양에서 다르게 인식하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다의적인것인가?..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왜 한쪽의 의견을 꼭이해해야하는가? [2004/01/29]
이명신
님.. 인식의 방법에 대하여서 관심이 되어지는 것보다.. 인식의 실존과 실제를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 님의 입장을 말해보세요.. 아마도 그것이 먼저 논의 되어야 할 것같군요.. 인식의 규정받는 것을 말하기 보다는 인식의 실존을 말하는 것이 앞설 것입니다. [2004/01/29]
이명신
일단 제가 말씀드린 것을 논의하는 것이 앞설 것같군요.. [2004/01/29]
샨티 그렇군요...그렇다면 신이 절대적인실체라는것또한 주관적임을 말씀드립니다...저는 부인하지도않았습니다...절대적인 존재가 있다하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존재가 아닙니다..그럼으로 우리는 그를 인식하지못합니다...그럼에도 상대적인 입장이 비난받아야할 이유가 어디에있겠습니까?..쉽게 말해 둘다 주관적이기는 마찬가 [2004/01/29]
샨티 지라는것입니다 [2004/01/29]
샨티 저는 아이에게 질문을 받았습니다..곤두박질이 뭐냐는?..그래서 설명을 하였습니다만 그아이는 실체적인 입장에서의 본질을 물어왔습니다..아연해졌더랬습니다..대답을 할수가 없었던 겁니다..그러나 상대적인 유사어로서 가능하다는것을 이해시켰습니다 [2004/01/29]
이명신
그렇지요 주관적이지요.. 하지만 그러한 주관이 실제적 정당함을 가질 때에는 주관적 편협이라고 함의 자리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생각하시지요.. 그리고 상대적인 입장이라고 함이 스스로 존재하지 못함이라고 하는 입장이 자존의 절대와 상관관계에서 규정하는 자체적 인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잊음이 비난이유입니다. [2004/01/29]
이명신
상대적 유사어라고 하는 것이 실체를 말할 수 있는 실제적 정당함을 자체적으로 가지지 않는다면 본의가 아니라고 하여도 사용하는 자의 기만적 입장을 드러낼뿐이라는 것입니다. [2004/01/29]
샨티 결국곤두박질이라는 단어는 상대의존적으로 존재했던 겁니다...그러한 예는 수없이 많습니다..그렇지않습니까?...절대적의지나 잘대적존재를 말씀하셨는데..우리가 인식하지못한다면 그것이 우리와 어떤연관을 가지겠습니까?...극단적인예를 들어 내가 존재하지않는 세상이 나와 어떠한 연관을 가질수있냐는 의문입니다 [2004/01/29]
샨티 자..서로의 입장은 익히알고있었고 또한 확인되었습니다..그런데 그것이 죄와 악과 어떠한 관계를 가진다는 말씀입니까? [2004/01/29]
샨티 악이라는 실체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2004/01/29]
샨티 실체가 있어서 절대적인 무한가운데 숨어(?)있는데 그것이 우리가 인식할때 상대적무한으로 불연속적으로 이해 된다는것입니까? [2004/01/29]
샨티 실존과 실체의 다양한하고 치열한 공방을 이자리에서 하고싶은 생각은 없습니다..토론은 서로의 이해를 확인하는것만 으로도 충분합니다 [2004/01/29]
이명신
아니.. 좀더 분별하셨으면 좋겠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은 제가 자존이라는 말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 말의 의미에서의 자기 정체성의 정당함과 그 사역의 행함이라고 함의 정당함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비합리성도 자기의 절대정당함으로 연속성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2004/01/29]
이명신
절대의 인식이라고 함.. 그것의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자존의 절대는 절대 자기 정당함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여러 절대의 개념과 달리 자기 주관의 편협을 넘어서고 있다는 점을 말해둡니다. 우리의 인식의 범주의 한정도 그가 넘고자 한다면 당연히 비합리적이면서도 넘어서 실제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2004/01/29]
이명신
신앙적 신학적 인식이라고 함은 철학적 인식의 현상학적 인식과 그 정당함을 말하는 주체를 달리 하고 있습니다. [2004/01/29]
이명신
치열한 공방이라고 하는 것도 한정적 범주의 개념에서는 한정되어지는 것으로 의미를 상실할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004/01/29]
샨티 그러한 논의의 전제는 절대존재의 증명이 앞서야 할것입니다...자..님의 입장에서 말씀하셔도 비난하지않습니다..이제는 논제로 돌아가보도록하지요? [2004/01/29]
샨티 반드시 절재적인실체를 샨티에게 인식시켜야 진행되는 토론입니까? [2004/01/29]
이명신
샨티님.. 증명이라고 함에서 비로소 실재를 말할 수 있는 것인가요.. 도그마라고 하는 것이 믿음의 표현이라고 함을 말할 때에 철학에서는 이성적 증명의 권위적 개념에서 이야기 되어지지만 자존이라는 개념의 신학적 개념은 그러한 철학적 개념의 정당함을 힘입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함이 옳다고 봅니다. [2004/01/29]
샨티 저의 주장은 악이란것은 실체가 없다는것입니다..곤두박질처럼 상호의존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란것입니다...왜냐하면 악의 실체가 관찰되거나 인식되어진역사가 없기 때문이죠...극단적인 예를 들수있겠지요..무인도에 혼자산다면 그가 어떠한 악을 행하겠습니까?..좀더 극단적으로 그는 무인도에서 태어났습니다.. [2004/01/29]
샨티 그는 언어조차 모릅니다..그가 어떠한 악을 행하고 인식할수있겠습니까?... [2004/01/29]
샨티 자존이라는 개념이 절대라는 명제를 가진다면 이미 그것은 도그마적인 입장에 속하게 됩니다..왜냐하면 우리는 절대적인것을 인식해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2004/01/29]
이명신
신에 대하여서 불가지적 개념과 단지 인간적으로 잘 모르니 맘대로 해라고 하면서 그 신과의 상관성에 대하여서 말하자고 하면.. 그것은 인식 판단 안으로 한정시키는 가운데서. 신빼고 신앙의 정체성을 말하자는 동의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토론 성립의 자체적 의미를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2004/01/29]
샨티 악함은 관계에서 나타나는것이 아닌가 합니다 [2004/01/29]
이명신
질문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절대적인것을 인식해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씀 하신 것의 실제적인 정당한 판단이라고 함을 어찌 말씀하시겠습니까.. 자체적 정당함을 말할 수 있는 합리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으로 신존재에 대한 인식의 포기를 정당화 할 수 있는 것의 정당함은 말할 수 없지요 [2004/01/29]
이명신
인식론적 존재론의 정당함을 자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을 총체적으로 묻는 것입니다. [2004/01/29]
샨티 그러합니까?...그렇다면 절대의지를 인식해야할겁니다...그러나 지금은 악에대해서 이야기하는것이 아닙니까?..신앙인의 시각도 인정될것입니다..님은 논제를 벗어나서 신앙인의 입장을 해명하실필요는없습니다 [2004/01/29]
이명신
신의 자존이라고 함을 설정함이라고 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볼 때에 비합리적이라고 하는 사실이라고 함에 비판을 받지만 그러나 절대자 자존의 절대 정당함은 그러한 판단을 실제적으로 받지 않음에 대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2004/01/29]
이명신
필요성이라고 함이 토론의 실제적인 규정의 의미로 받을 수 있다고만 할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필요성이라고 함을 부여하는 인식의 자체적 정당함을 말할 수 없는 가운데서는 말입니다. [2004/01/29]
샨티 인식론적존재론은 샨티의 입장으로 알고있습니다만...ㅡㅡ;;;; [2004/01/29]
샨티 논제에대한 토론에 관심이없으시나 보군요... [2004/01/29]
푸른장미 우리는 철학적 명제로 악을 논하자는게 아닙니다. 기독교 교리적 관점에서 악의 근원이 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원하는 것은 유일신으로부터 어떻게 죄가 파생되었느냐 하는것입니다. 특히 이명신님의 글은 ㅈㅣ나치게 추상적이어서 토론의 본질을 훼손할 우려가 많습니다. 명료한 토론을 기대합니다 [2004/01/29]
이명신
그렇지요.. 님의 입장이 인식론적 존재론이라고 함을 알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철학적인 입장에서는 존재론적 인식론과 비교할 때에 그것의 비판적 입장이기에 사르트르와 같은 자의 입장 이후에 인식론적 존재론이 앞서고 있는데 이것은 절대의 자존이라고 함을 기억하지 못한 가운데서 식상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봅니다. [2004/01/29]
이명신
샨티님, 토론이라고 함의 실제규정이라고 함의 기준을 왜면한다면 형식적인 토론일 될뿐 실제적인 토론을 할 수 있겠습니까.. 없다고 봅니다. [2004/01/29]
이명신
푸른장미님, 표현적인 합리성이 추상적이라고 임의적으로 말씀하시지 말고 구체적인 근거를 가지고 추상이라고 생각하고 말씀하시라는 것입니다. [2004/01/29]
샨티 절대자존이 존재했다면 그것을 기억하지못한 패역이있겠지요...하지만 저는 그것을 인정하지않습니다...논제는 악의 본질이나 양태에대한 탐구였습니다..님의 신앙을 강요하는것입니까?...절대자존이 존재했다는 증거를 제시해주십시오...그러나 반드시 실체론이 실존론을 앞서는 것이라고는 할수없습니다 [2004/01/29]
샨티 님은 그기에 이미 못을 박고 말씀하시나...실체론이 근거를 가진적은 단 한번도 없었지요..그러니 전 그러한 토론의 가치를 느끼지 못합니다..님의 신앙에대해서 이토론에 대해서만큼은 비난하거나 그럴생각없습니다...너무지나치게 예민하지않으셔도 됩니다 [2004/01/29]
샨티 실제규정의 기준을 외면한다라고요?...그것이 있다면 그리하지않겠지요..그렇다면 실제의 기준을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2004/01/29]
이명신
샨티님.. 모~ 비난하시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존하심에 대한 기억이라고 함을 못함이라고 하는 것에서 자존이 자체적 존립함에 대한 판단을 받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2004/01/29]
샨티 상당히 피곤하군요..님의 악명을 익히들어알고있지만...님의 주장은 이것입니다...신의 실체는 있다 그것이 모든것의 기준이다..그것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가치도 없다..그럼으로 토론자체도 이시각에서 해야한다..맞지요?...꼭답변바랍니다 [2004/01/29]
이명신
제가 전제함에 대한 비합리성이라고 하는 것.. 그것은 자존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자기 계시의 실존이라고 함에서 정당함을 입을 수 있다면 그 비합리적이라는 인식적 비판에서 자유함에 대한 정당함을 말할 수 있다는 것과 그 합리성을 또한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2004/01/29]
샨티 어려운말이 필요없습니다..님의 말을 해석함에도 한계를 느낍니다..국어공부좀 하십시요...쉽게 대화해도 지혜로운 말은 그의미를 빛냅니다..저의 님의 입장정리에 최소한 답변바라는겁니다 [2004/01/29]
푸른장미 이명신님-악의 근원을 제기한 당사자입니다. 윗글과 마찬가지로 제가 토론하고자 하는 것은 기독교교리적 죄의 발생논리지 악의 인식론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저는 작가입니다. 그래서그런지 철학 하시는 분들의 문장은 명쾌하게 보이지 않습니다.<제가 원하는것도 신학적 실제적인 토론>입니다. 토론의 본질을 - [2004/01/29]
샨티 혹시 이런말 많이 듣지않습니까? [2004/01/29]
푸른장미 찾아 토론하자는 것입니다, 인식론을 토론하자는것이 아닙니다/ 정말 문장법 공부는 하셔야겠습니다! [2004/01/29]
이명신
토론의 자체적 존립을 말한다면.. 예외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상대적인 개념의 토론이라고 하는 존재는 자존의 개념의 판단하에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한 당위성의 한정적 비판은 상대적인 측면에서는 가능하지만 그러한 가능할뿐 실체의 존재를 말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저의 입장이 보편성을 가지는 것입니다. [2004/01/29]
이명신
푸른장미님 신학적 토론이라고 하는 것이 신에 대한 토론없이 실제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것은 형태적일뿐 진정한 신학의 의미를 지니지 못합니다. [2004/01/29]
샨티 제가 오널 밤샘을 해서 끝내야 화는일이있습니다..님의 토론에대해 끝까지 가보고싶은 마음 꿀떡같습니다..그러나 제약이있습니다...쉽게 간명하게 말할수있습니다..님의 말은 사실 어렵지도 않습니다..말을 잘할줄 모르시는것같습니다..같은 의미를 설명하는데 반어를 4번씩 쓰는것은 첨 봅니다..최소한의 예의를 지켜 주 [2004/01/29]
샨티 세요 [2004/01/29]
이명신
인식론을 토론하지 않고.. 인식의 산물을 토론하겠다.. 인식에 대한 비판의 객관성이 없이 주관적 판단을 하겠다.. 형태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실제적이지 못하지요.. 즉 사실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2004/01/29]
샨티 님은 토론을 그런식으로합니까?...이토론이 신학적인 견지에서 출발해야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이미 토론에 한계를 두었는데 왜 무시하시지요? [2004/01/29]
푸른장미 이명신님의 글은 문장이아니라 암호입니다--기호학적 암호도 아닌 혼자만 알고 남을 이해시키지 못하는 그런 암호입니다 [2004/01/29]
샨티 아니 실체론적인 존재론이 검증된적이 단한번도 ?는데 그것을 여기서 해결하시겠다?..그것이 객관인가요? [2004/01/29]
이명신
저도 가야 할 시간이 지났군요.. 제가 말을 잘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표현이라고 함이 여러가지 있을 수 있다는 객관성은 인정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러한 생각도 듭니다. [2004/01/29]
샨티 양이모여 질을 형성하는경우도있습니다..그것은 철학입문개론에 당근나와있지요?...님은 오로지 철학의 한부분만을 주장하시는것이 아닙니까?...꼭연역적이어야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철학하신분 맞습니까?..신학이 그러합니까? [2004/01/29]
푸른장미 신을 토론하자면 몇천년은 걸리죠--인류사 이래 종교의 원천부터 따져야 하니까---저는 여기서 제한적인 죄악론을 토론하자고 한 것입니다/ 더이상 확대하지 맙시다-- [2004/01/29]
이명신
신학적 견지에서 출발해야 할 이유라고 함.. 그 이유라고 하는 것이 토론이라고 함을 필요 이상으로 한정시킨다는 점을 말하는 것으로 받으시면 최소한의 답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2004/01/29]
샨티 없는 기준을 우겨서 만들어 그것으로 토론을 하고 모든것을 적용하자고요?...남이 인정하리라 생각하십니까?...바로 그것이 우상숭배 아닙니까? [2004/01/29]
이명신
아이참.. 없는 기준이라고 함을 인위적으로 규정하고 우긴다는 표현을 하심은 님의 후에 판단들을 무색하게 만드는군요.. [2004/01/29]
샨티 있다면 근거를 제시하세요... [2004/01/29]
샨티 근거를 제시할수없다면 보편타당하게 말이죠....없는것을 있는것처럼 우기는 것이 될것입니다... [2004/01/29]
이명신
저의 부분적 주장이라고 함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의 실제적인 정당함을 말할 수 있다고 할 때에 상대적 보편으로서의 개연성은 그 실제를 자체적으로 말하지 못한다고 할 때에 철학적으로도 실제에 입각한 사실을 누가 바르게 말하는 것인가 생각하시라는 말씀드립니다. [2004/01/29]
이명신
제가 자존이라고 함을 증거함에 대하여서 비합리적이면서도 자체적 정당함을 가진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상대적 보편의 판단을 받지 않는 자존의 절대자의 절대 보편은 상대적 보편의 판단하에 있지 않으면서도 핑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에 열어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2004/01/29]
푸른장미 이명신님--한 문장에서 말하고자하는 주제가 끝나면 일단 마감을 하고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세요 숨차서못 읽겟고 말씀하시고자하는 핵심이 증발됩니다 -- 자신의 윗 윗글을 다시한번 정독해 보시기 바랍니다 뜻은 알겠지만 이런 문장은 지금 아무도 쓰지 않습니다/샨티님이나 제 문장을 읽으면서요--- [2004/01/29]
이명신
푸른장미님, 님이 상대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면, 글쓰는 작가로서 여러가지 패턴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하여서는 열려있어야 하겠지요.. 강요는 아닙니다만 지나치는 모습이 될것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2004/01/29]
시선 깨달음이란...어렵게 말하던 ... 쉽게 말하던....명백함을 전해줄수 있어야 하는데....'호환성'이 상실된 깨달음은.....'전달'이 불가능한것이 아닐까......요? '상대적인 사고'는 '열린 귀'로부터 나오는 거지요... [2004/01/29]
샨티 결국 근거는 제시할수가 없습니다..압니다..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사상속에 철학속에서만 존재하는 추측일수도 있다는것입니다,..아니 상당히 그럴가능성이 농후합니다..님은 상대성을 인정하라고 하시지만 그것은 님의 방향으로만의 방향성입니다...그런것은 누구도 인정할수없는것입니다..님의 토론 방식은 [2004/01/29]
샨티 오히려 님의 신앙을 곤란한것으로 만들수있습니다..신앙은 가슴이어야합니다...왜 다른이가 절대적인 실체를 인정할수없을수도있는데 그것을 인정하는것이 상대성을 인정하는것이며...그렇다면 그럴수있는 개연성일텐데.그것을 수용해야만한다는겁니다...말이 되는 이야기입니까? [2004/01/29]
샨티 상대성은 둘다에게 적용되어야합니다...에휴....죄와악에대해서는 다른님들과 토론하고 저도 기독교적인 시각을 지켜보아야겠군요...그러나 참으로 안타깝군요...시간....ㅡㅡ;;; [2004/01/29]
푸른장미 상대적 사고라 하시지만 도저히 납득 안가는 문장을 이해하라는 것은 이명신씨야 말로 상대적 사고가 필요하다는논리가 되겟네요/ 아무리 여러가지 패턴이있다고하지만 저도 책좀 읽엇고 글 쫌 썼지만 --그야말로 호환이 안되네요--독서하시면서 문장을 살펴 보세요-- [2004/01/29]
http://geocities.com/vosscare
글쓴이
comments:
1. 다음 예수그리스도 향기까페에서 대화한 내용입니다. 주로 저와 꼬리말로 답변하였음을 참고해주세요
2. 해설 : 마지막 대화가 자존의 절대자의 자기 정당함에서 일방성을 가진다는 것과 또한 자체적 절대 정당함을 가진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가운데서 인드라님은 대화의 원점인 것같이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것은 상대적인 합리성이라는 개념을 절대화 하려는 가운데서 입장을 실제적으로 말씀하시고 싶어하는 것으로 이미 부정되어진 것의 확인되어짐을 인정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이명신님의 글에 글을 달수없군요
번호:3494 글쓴이: 샨티
조회:89 날짜:2004/01/29 18:24
.. 인용은 그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이지요..그것조차 비난해서야 되겠습니까?..게다가 어거스틴외에도 그러한 견지를 가진자는 무수히 많습니다...저는 오히려 그가 빼끼었다고 생각합니다...ㅡㅡㅋㅋ...
꼬리말 쓰기
샨티 왜 죄가 그토록 진지한 토론의 대상이 될수있는가는 그위에 교리가 자리잡고있기 때문입니다..더러는 거짓이라고 생각하면 어떤이는 왜곡이라말하고 어떤이는 지당하다고 하죠..중요한 토론주제입니다 [2004/01/29]
샨티 가능하다면 명신님의 의견을 듣고싶습니다..다만 소모성글은 좀 그렇군요...죄나 악은 어떻것이며 왜 생기며 어떤작용을 하고 어떤영향을 미치는가?...그것이 개신교의 교리와는 어떤관계가 있는가..등등 아주 풍부한재료라고 생각합니다 [2004/01/29]
이명신
풍부한 것과 실제적인 것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실제적이지 않다면 그것은 님의 말과 같이 소모성의 글장난에 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2004/01/29]
샨티 네...실제적이란 기준은 단하나겠죠?... [2004/01/29]
샨티 전 오히려 그것이 한계라고 생각하는데요...님의 말씀따나 상당히 주관적이라는것이겠죠...추측으로 미리 결론을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만...이런 취지라고 이해해주심 좋겠군요...양이 모이면 질의 변화를 가져온다... [2004/01/29]
샨티 진리라면 어떠한 방면으로 접근해도 진리의 결과에 도달하는것에 무리가 없을겁니다...우리는 다양한 의견으로 접근함으로써 죄와악이란 문제를 좀더 자세히 알게 될것이며 종교적 진리를 만나는 즐거움과 놀라움 은혜를 만날수도 있겠지요...물론 샨티는 그기에 제동을 걸어나가겠지만 말입니다...^^;;; [2004/01/29]
샨티 자 명신님 참여해주셨으니...질문드립니다...악이란 무엇일까요?..악의 실체가 있어서 우리가 악을 인지할까요? [2004/01/29]
이명신
절대란 둘이 아니겠지요..^^ [2004/01/29]
샨티 무슨뜻인지 보충설명 부탁드릴께요...토론은 상대방의 지식수준을 고려하셔서하심이 그배려가 될것입니다... [2004/01/29]
이명신
보충이 아니라 본 논의가 시작되어진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음을 말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님의 지적수준은 저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말 그대로 절대라는 개념이 둘이냐고 물었습니다. [2004/01/29]
샨티 아니겠죠..적어도 우리의 관념에 존재하는 절대란 개념은 둘이 아닙니다..동의합니다 [2004/01/29]
이명신
그러면 절대의 실재는 하나뿐이라는 개념도 인정하셔야 하는 당위성이 있군요.. 물론 관념이라고 하는 틀의 범주 안에서 사멸되어지는 그러한 인공적 절대를 말하는 것은 아니구요.. [2004/01/29]
샨티 그것은 곤란합니다..님이 말씀하신 두그절중 전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후자는 아직 확인이 안되었습니다..적어도 보편적인 입장에서는요... [2004/01/29]
이명신
좋습니다. 그럼 질문이 될 수 있는 것은 무한의 상대성에 대하여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2004/01/29]
샨티 무한의 상대성이라니요..시간에대해서도 절대적의미를 부여하는것입니까? [2004/01/29]
샨티 샨티가 지식이 부족하나 봅니다...그러한 용어는 들어본적이 없군요... [2004/01/29]
이명신
예를 들어 말한다면, 자연수의 집합은 정수에 포함되면서도 자연수의 집합은 무한집합입니다. 무한이면서도 상대적 한정적 의미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2004/01/29]
이명신
제가 자연수라는 개념의 상대적 무한을 말하는 것은 경우의 수나 운동으로 나타낼 수 있고 인식되어지는 시간이라고 함도 역시 한정적 무한으로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004/01/29]
이명신
이러한 상대적 무한과 절대의 무한이라고 하는 개념이 동일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일반적으로 무한이라는 개념이 절대의 무한과 동일시 되어진다는 분별을 하지 못한 철학적 입장들의 딜레마를 종종 봅니다. [2004/01/29]
샨티 동의합니다... [2004/01/29]
샨티 그러나 말입니다...무한의 상대성을 인정하는것은 무한을 인식함에있어서 부분을 취하는 결과이지 그것이 어떠한 실체가 있다거나 그자체가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것은 아니라고봅니다..또한 절대의 무한도 마찬가지입니다..그래서 둘은 다르지않다고 말씀드릴수있겠습니다 [2004/01/29]
샨티 절대의 무한이라는 관념에 어떠한 인식을 할수있습니까?..전 전혀 할수없습니다..솔직한 이야기입니다 [2004/01/29]
샨티 둘사이에 어떠한 차이점이있는지 이해가 안됩니다...용어적한정적인 의미에서는 이해가 됩니다만..그것이 본질적 차이를 가진다는 말씀이신것 같은 데..그점은 이해가 안되고 있습니다 [2004/01/29]
샨티 일단 논제와의 연관성을 되도록 빨리 정리해주셨으면 합니다...그리고 전체적으로 말씀해주시고 이야기를 전개하지요? [2004/01/29]
이명신
제가 말하는 것은 님의 그러한 판단은 상대적 보편일뿐 절대의 보편이라고 함의 실재를 의지하지 않고 또한 그를 판단하지 못한다고 임의로 말하고 있습니다. 임의가 아니라면 님의 말의 실제적 확실성을 절대적으로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상대적 여지는 남겨야 하겠지요.. [2004/01/29]
이명신
한마디로 님의 합리성이 있음을 말함에 일리가 있으나 그러한 것은 그 개연성일뿐 실제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즉 님이 표현한 무한인식의 부분이라고 함과 절대의 무한도 마찬가지라는 개념은 성립이 안되지요.. 마찬가지라는 개념은 상식보편의 임의적 개념이지 절대적이지 않지요.. [2004/01/29]
이명신
맞습니다. 상대적 무한과 절대의 무한은 본질적 차이가 있음과 그럼에도 연속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절대의 의지 때문이지요.. 신의 의지.. 절대자가 아니면 진정한 신이 아니니까.. [2004/01/29]
샨티 무슨말씀이십니까?...샨티해석: 샨티는 상대적입장에서 이야기함으로 절대적인 인식을 모른다고 함부로 이야기한다..함부로 이야기하는게 아니라면 상대적입장이 진리라고 확증해야할것이며 절대적인 인식의 가능성을 염두에두라.......라고 받아들여도 됩니까?...근데 말이 너무어렵군요..ㅡㅡ;; [2004/01/29]
이명신
님이 상대적 무한과 절대 무한의 불 연속성과 연속성에 대한 이해를 분명히 하셨으면 합니다. [2004/01/29]
샨티 절대적개념을 님은 획득하셨나 보군요...일단 엄어가도록 하지요..그런데 그것이 죄와 악의 근원을 밝히는데 어떠한 연관성이있다는 이야기입니까? [2004/01/29]
샨티 연속과 불연속에 대해서 저는 전혀 인식할수없습니다..이것은 사실입니다 [2004/01/29]
이명신
앞선 말에 저의 입장을 전부 말한 것이기에 이해가 어려우셨을 것입니다. 저의 표현의 난해함도 있지만.. 앞서 말씀드린 상대적 무한이라는 것과 절대 무한의 불연속성과 연속성을 먼저 이해하심이 범주적인 의미와 한정적 의미의 사상적인 표현을 이해하실 수 있다고 봅니다. [2004/01/29]
이명신
감사합니다.. 저의 표현을 이해하시려고 노력하시는 가운데서 겸손히 말씀해주셔서.. [2004/01/29]
샨티 예를들어주심 이해가 될수도있겠군요...그러나 논제와 어떤연관을 가지는지에 대해서 먼저듣고싶습니다 [2004/01/29]
이명신
연속성이라고 하는 것은 합리적 연속성을 말할 수 있고 불 연속성이라고 하는 것은 비합리성을 말합니다. 이것은 인식이라고 하는 것이 시간의 연속성과 관련되어진 것이기에 시간이 숫자적 개념으로 표현된다면 자연수의 집합과 정수의 집합이 연속성과 불연속성이 있는 것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2004/01/29]
이명신
즉 사상의 연속성과 비연속성이라고 함을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에서는 러셀과 같은 입장에서는 범주에 대하여서 자신이 없어 합니다. 그러한 영향력이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분별을 하지 않는 가운데 딜레마를 남겨두었지요.. [2004/01/29]
샨티 범주라면 상당히 다의적인 용어입니다 ..토론에있어서는 자신의 용어를 사용함에 특정적인 의도가 있다면 먼저 밝히는것이 예의 입니다 [2004/01/29]
샨티 연속과 비연속에대한 말씀은 접수가 되었습니다..그러나 그것또한 실체가있는것이 아닌 관념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는가에대한 방법론적인 것일뿐입니다...예를들어 정수의 진행이있다면 연속적이라 이해가 될것입니다..그러나 비연속성의 진행이있다면 우리는 인식하지못할것입니다.. [2004/01/29]
샨티 그러나 그것은 숫자적인 진행의 모습이 연속비연속이라해도 숫자라는 관념자체가 달라지지는 않습니다..그러한 말씀을 하시는것을 보니 그기에는 어떠한것을 설명하기 위한 의도가 있어보입니다..그의도를 담백하게 말씀하시지요? [2004/01/29]
샨티 신이 절대적인 존재라면 상대적인 인간의 존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요?...관념은 그러한 딜레마를 끝없이 생산합니다...진리와 진실은 단순한것이라 생각됩니다..죄와 악에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저 밤을 세울수는없지않겠습니까? [2004/01/29]
샨티 그리고 님께서 계속사용하시는 실제라는 용어또한 한정해주셨으면 합니다.. [2004/01/29]
이명신
범주라고 하면 다의적 언어로 말할 수 있지요.. 하지만 기본적인 입장에서 사용함에 그 실제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임의적이라고 하여도 상대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 대화하면서 분명해질 것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2004/01/29]
샨티 님의 요지를 먼저 성급하게 정리해봅니다..실제라는것...우리가 경험하고 인식하는 것의 기준은 하나이다..그것은 절대자의 의지이며 죄와악이란것또한 그의 의지에 기인한다?..대충맞습니까? [2004/01/29]
이명신
그리고 인식의 방법론이라는 개념이 인식의 동의 하에서 실존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임의로 부정할 수 있다는 것이 항상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음은 주장할 수 없는 것이 상식보편적 입장이라고 함에 충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04/01/29]
이명신
숫자의 모델이라고 함은 우리가 인식이라고 함이 시간의 보편성 안에서 규정되어진다는 것은 서양철학에서 거의 정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물론 불교나 동양철학에서 시간관에서는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 시간인식 하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은 수라는 개념을 의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004/01/29]
샨티 해석:..ㅡㅡ;;...실존적인식방법은 그나름의 의미는 인정되나 실체적인인식방법을 넘어서는것은 아니다?...맞습니까?...ㅡㅡ;;;;;; [2004/01/29]
이명신
신이 절대자라고 함에 대하여서 이의를 제기하셨는데 그 이의의 실제적인 근거는 없이 주관적 의미에서는 규정할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함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상대적 보편에서는 어떤 것을 강조한다는 것은 지나칠 수 있다는 자체적 딜레마가 있으니까요.. [2004/01/29]
샨티 동양과 서양에서 다르게 인식하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다의적인것인가?..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왜 한쪽의 의견을 꼭이해해야하는가? [2004/01/29]
이명신
님.. 인식의 방법에 대하여서 관심이 되어지는 것보다.. 인식의 실존과 실제를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 님의 입장을 말해보세요.. 아마도 그것이 먼저 논의 되어야 할 것같군요.. 인식의 규정받는 것을 말하기 보다는 인식의 실존을 말하는 것이 앞설 것입니다. [2004/01/29]
이명신
일단 제가 말씀드린 것을 논의하는 것이 앞설 것같군요.. [2004/01/29]
샨티 그렇군요...그렇다면 신이 절대적인실체라는것또한 주관적임을 말씀드립니다...저는 부인하지도않았습니다...절대적인 존재가 있다하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존재가 아닙니다..그럼으로 우리는 그를 인식하지못합니다...그럼에도 상대적인 입장이 비난받아야할 이유가 어디에있겠습니까?..쉽게 말해 둘다 주관적이기는 마찬가 [2004/01/29]
샨티 지라는것입니다 [2004/01/29]
샨티 저는 아이에게 질문을 받았습니다..곤두박질이 뭐냐는?..그래서 설명을 하였습니다만 그아이는 실체적인 입장에서의 본질을 물어왔습니다..아연해졌더랬습니다..대답을 할수가 없었던 겁니다..그러나 상대적인 유사어로서 가능하다는것을 이해시켰습니다 [2004/01/29]
이명신
그렇지요 주관적이지요.. 하지만 그러한 주관이 실제적 정당함을 가질 때에는 주관적 편협이라고 함의 자리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생각하시지요.. 그리고 상대적인 입장이라고 함이 스스로 존재하지 못함이라고 하는 입장이 자존의 절대와 상관관계에서 규정하는 자체적 인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잊음이 비난이유입니다. [2004/01/29]
이명신
상대적 유사어라고 하는 것이 실체를 말할 수 있는 실제적 정당함을 자체적으로 가지지 않는다면 본의가 아니라고 하여도 사용하는 자의 기만적 입장을 드러낼뿐이라는 것입니다. [2004/01/29]
샨티 결국곤두박질이라는 단어는 상대의존적으로 존재했던 겁니다...그러한 예는 수없이 많습니다..그렇지않습니까?...절대적의지나 잘대적존재를 말씀하셨는데..우리가 인식하지못한다면 그것이 우리와 어떤연관을 가지겠습니까?...극단적인예를 들어 내가 존재하지않는 세상이 나와 어떠한 연관을 가질수있냐는 의문입니다 [2004/01/29]
샨티 자..서로의 입장은 익히알고있었고 또한 확인되었습니다..그런데 그것이 죄와 악과 어떠한 관계를 가진다는 말씀입니까? [2004/01/29]
샨티 악이라는 실체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2004/01/29]
샨티 실체가 있어서 절대적인 무한가운데 숨어(?)있는데 그것이 우리가 인식할때 상대적무한으로 불연속적으로 이해 된다는것입니까? [2004/01/29]
샨티 실존과 실체의 다양한하고 치열한 공방을 이자리에서 하고싶은 생각은 없습니다..토론은 서로의 이해를 확인하는것만 으로도 충분합니다 [2004/01/29]
이명신
아니.. 좀더 분별하셨으면 좋겠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은 제가 자존이라는 말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 말의 의미에서의 자기 정체성의 정당함과 그 사역의 행함이라고 함의 정당함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비합리성도 자기의 절대정당함으로 연속성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2004/01/29]
이명신
절대의 인식이라고 함.. 그것의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자존의 절대는 절대 자기 정당함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여러 절대의 개념과 달리 자기 주관의 편협을 넘어서고 있다는 점을 말해둡니다. 우리의 인식의 범주의 한정도 그가 넘고자 한다면 당연히 비합리적이면서도 넘어서 실제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2004/01/29]
이명신
신앙적 신학적 인식이라고 함은 철학적 인식의 현상학적 인식과 그 정당함을 말하는 주체를 달리 하고 있습니다. [2004/01/29]
이명신
치열한 공방이라고 하는 것도 한정적 범주의 개념에서는 한정되어지는 것으로 의미를 상실할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004/01/29]
샨티 그러한 논의의 전제는 절대존재의 증명이 앞서야 할것입니다...자..님의 입장에서 말씀하셔도 비난하지않습니다..이제는 논제로 돌아가보도록하지요? [2004/01/29]
샨티 반드시 절재적인실체를 샨티에게 인식시켜야 진행되는 토론입니까? [2004/01/29]
이명신
샨티님.. 증명이라고 함에서 비로소 실재를 말할 수 있는 것인가요.. 도그마라고 하는 것이 믿음의 표현이라고 함을 말할 때에 철학에서는 이성적 증명의 권위적 개념에서 이야기 되어지지만 자존이라는 개념의 신학적 개념은 그러한 철학적 개념의 정당함을 힘입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함이 옳다고 봅니다. [2004/01/29]
샨티 저의 주장은 악이란것은 실체가 없다는것입니다..곤두박질처럼 상호의존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란것입니다...왜냐하면 악의 실체가 관찰되거나 인식되어진역사가 없기 때문이죠...극단적인 예를 들수있겠지요..무인도에 혼자산다면 그가 어떠한 악을 행하겠습니까?..좀더 극단적으로 그는 무인도에서 태어났습니다.. [2004/01/29]
샨티 그는 언어조차 모릅니다..그가 어떠한 악을 행하고 인식할수있겠습니까?... [2004/01/29]
샨티 자존이라는 개념이 절대라는 명제를 가진다면 이미 그것은 도그마적인 입장에 속하게 됩니다..왜냐하면 우리는 절대적인것을 인식해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2004/01/29]
이명신
신에 대하여서 불가지적 개념과 단지 인간적으로 잘 모르니 맘대로 해라고 하면서 그 신과의 상관성에 대하여서 말하자고 하면.. 그것은 인식 판단 안으로 한정시키는 가운데서. 신빼고 신앙의 정체성을 말하자는 동의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토론 성립의 자체적 의미를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2004/01/29]
샨티 악함은 관계에서 나타나는것이 아닌가 합니다 [2004/01/29]
이명신
질문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절대적인것을 인식해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씀 하신 것의 실제적인 정당한 판단이라고 함을 어찌 말씀하시겠습니까.. 자체적 정당함을 말할 수 있는 합리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으로 신존재에 대한 인식의 포기를 정당화 할 수 있는 것의 정당함은 말할 수 없지요 [2004/01/29]
이명신
인식론적 존재론의 정당함을 자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을 총체적으로 묻는 것입니다. [2004/01/29]
샨티 그러합니까?...그렇다면 절대의지를 인식해야할겁니다...그러나 지금은 악에대해서 이야기하는것이 아닙니까?..신앙인의 시각도 인정될것입니다..님은 논제를 벗어나서 신앙인의 입장을 해명하실필요는없습니다 [2004/01/29]
이명신
신의 자존이라고 함을 설정함이라고 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볼 때에 비합리적이라고 하는 사실이라고 함에 비판을 받지만 그러나 절대자 자존의 절대 정당함은 그러한 판단을 실제적으로 받지 않음에 대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2004/01/29]
이명신
필요성이라고 함이 토론의 실제적인 규정의 의미로 받을 수 있다고만 할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필요성이라고 함을 부여하는 인식의 자체적 정당함을 말할 수 없는 가운데서는 말입니다. [2004/01/29]
샨티 인식론적존재론은 샨티의 입장으로 알고있습니다만...ㅡㅡ;;;; [2004/01/29]
샨티 논제에대한 토론에 관심이없으시나 보군요... [2004/01/29]
푸른장미 우리는 철학적 명제로 악을 논하자는게 아닙니다. 기독교 교리적 관점에서 악의 근원이 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원하는 것은 유일신으로부터 어떻게 죄가 파생되었느냐 하는것입니다. 특히 이명신님의 글은 ㅈㅣ나치게 추상적이어서 토론의 본질을 훼손할 우려가 많습니다. 명료한 토론을 기대합니다 [2004/01/29]
이명신
그렇지요.. 님의 입장이 인식론적 존재론이라고 함을 알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철학적인 입장에서는 존재론적 인식론과 비교할 때에 그것의 비판적 입장이기에 사르트르와 같은 자의 입장 이후에 인식론적 존재론이 앞서고 있는데 이것은 절대의 자존이라고 함을 기억하지 못한 가운데서 식상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봅니다. [2004/01/29]
이명신
샨티님, 토론이라고 함의 실제규정이라고 함의 기준을 왜면한다면 형식적인 토론일 될뿐 실제적인 토론을 할 수 있겠습니까.. 없다고 봅니다. [2004/01/29]
이명신
푸른장미님, 표현적인 합리성이 추상적이라고 임의적으로 말씀하시지 말고 구체적인 근거를 가지고 추상이라고 생각하고 말씀하시라는 것입니다. [2004/01/29]
샨티 절대자존이 존재했다면 그것을 기억하지못한 패역이있겠지요...하지만 저는 그것을 인정하지않습니다...논제는 악의 본질이나 양태에대한 탐구였습니다..님의 신앙을 강요하는것입니까?...절대자존이 존재했다는 증거를 제시해주십시오...그러나 반드시 실체론이 실존론을 앞서는 것이라고는 할수없습니다 [2004/01/29]
샨티 님은 그기에 이미 못을 박고 말씀하시나...실체론이 근거를 가진적은 단 한번도 없었지요..그러니 전 그러한 토론의 가치를 느끼지 못합니다..님의 신앙에대해서 이토론에 대해서만큼은 비난하거나 그럴생각없습니다...너무지나치게 예민하지않으셔도 됩니다 [2004/01/29]
샨티 실제규정의 기준을 외면한다라고요?...그것이 있다면 그리하지않겠지요..그렇다면 실제의 기준을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2004/01/29]
이명신
샨티님.. 모~ 비난하시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존하심에 대한 기억이라고 함을 못함이라고 하는 것에서 자존이 자체적 존립함에 대한 판단을 받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2004/01/29]
샨티 상당히 피곤하군요..님의 악명을 익히들어알고있지만...님의 주장은 이것입니다...신의 실체는 있다 그것이 모든것의 기준이다..그것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가치도 없다..그럼으로 토론자체도 이시각에서 해야한다..맞지요?...꼭답변바랍니다 [2004/01/29]
이명신
제가 전제함에 대한 비합리성이라고 하는 것.. 그것은 자존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자기 계시의 실존이라고 함에서 정당함을 입을 수 있다면 그 비합리적이라는 인식적 비판에서 자유함에 대한 정당함을 말할 수 있다는 것과 그 합리성을 또한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2004/01/29]
샨티 어려운말이 필요없습니다..님의 말을 해석함에도 한계를 느낍니다..국어공부좀 하십시요...쉽게 대화해도 지혜로운 말은 그의미를 빛냅니다..저의 님의 입장정리에 최소한 답변바라는겁니다 [2004/01/29]
푸른장미 이명신님-악의 근원을 제기한 당사자입니다. 윗글과 마찬가지로 제가 토론하고자 하는 것은 기독교교리적 죄의 발생논리지 악의 인식론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저는 작가입니다. 그래서그런지 철학 하시는 분들의 문장은 명쾌하게 보이지 않습니다.<제가 원하는것도 신학적 실제적인 토론>입니다. 토론의 본질을 - [2004/01/29]
샨티 혹시 이런말 많이 듣지않습니까? [2004/01/29]
푸른장미 찾아 토론하자는 것입니다, 인식론을 토론하자는것이 아닙니다/ 정말 문장법 공부는 하셔야겠습니다! [2004/01/29]
이명신
토론의 자체적 존립을 말한다면.. 예외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상대적인 개념의 토론이라고 하는 존재는 자존의 개념의 판단하에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한 당위성의 한정적 비판은 상대적인 측면에서는 가능하지만 그러한 가능할뿐 실체의 존재를 말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저의 입장이 보편성을 가지는 것입니다. [2004/01/29]
이명신
푸른장미님 신학적 토론이라고 하는 것이 신에 대한 토론없이 실제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것은 형태적일뿐 진정한 신학의 의미를 지니지 못합니다. [2004/01/29]
샨티 제가 오널 밤샘을 해서 끝내야 화는일이있습니다..님의 토론에대해 끝까지 가보고싶은 마음 꿀떡같습니다..그러나 제약이있습니다...쉽게 간명하게 말할수있습니다..님의 말은 사실 어렵지도 않습니다..말을 잘할줄 모르시는것같습니다..같은 의미를 설명하는데 반어를 4번씩 쓰는것은 첨 봅니다..최소한의 예의를 지켜 주 [2004/01/29]
샨티 세요 [2004/01/29]
이명신
인식론을 토론하지 않고.. 인식의 산물을 토론하겠다.. 인식에 대한 비판의 객관성이 없이 주관적 판단을 하겠다.. 형태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실제적이지 못하지요.. 즉 사실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2004/01/29]
샨티 님은 토론을 그런식으로합니까?...이토론이 신학적인 견지에서 출발해야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이미 토론에 한계를 두었는데 왜 무시하시지요? [2004/01/29]
푸른장미 이명신님의 글은 문장이아니라 암호입니다--기호학적 암호도 아닌 혼자만 알고 남을 이해시키지 못하는 그런 암호입니다 [2004/01/29]
샨티 아니 실체론적인 존재론이 검증된적이 단한번도 ?는데 그것을 여기서 해결하시겠다?..그것이 객관인가요? [2004/01/29]
이명신
저도 가야 할 시간이 지났군요.. 제가 말을 잘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표현이라고 함이 여러가지 있을 수 있다는 객관성은 인정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러한 생각도 듭니다. [2004/01/29]
샨티 양이모여 질을 형성하는경우도있습니다..그것은 철학입문개론에 당근나와있지요?...님은 오로지 철학의 한부분만을 주장하시는것이 아닙니까?...꼭연역적이어야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철학하신분 맞습니까?..신학이 그러합니까? [2004/01/29]
푸른장미 신을 토론하자면 몇천년은 걸리죠--인류사 이래 종교의 원천부터 따져야 하니까---저는 여기서 제한적인 죄악론을 토론하자고 한 것입니다/ 더이상 확대하지 맙시다-- [2004/01/29]
이명신
신학적 견지에서 출발해야 할 이유라고 함.. 그 이유라고 하는 것이 토론이라고 함을 필요 이상으로 한정시킨다는 점을 말하는 것으로 받으시면 최소한의 답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2004/01/29]
샨티 없는 기준을 우겨서 만들어 그것으로 토론을 하고 모든것을 적용하자고요?...남이 인정하리라 생각하십니까?...바로 그것이 우상숭배 아닙니까? [2004/01/29]
이명신
아이참.. 없는 기준이라고 함을 인위적으로 규정하고 우긴다는 표현을 하심은 님의 후에 판단들을 무색하게 만드는군요.. [2004/01/29]
샨티 있다면 근거를 제시하세요... [2004/01/29]
샨티 근거를 제시할수없다면 보편타당하게 말이죠....없는것을 있는것처럼 우기는 것이 될것입니다... [2004/01/29]
이명신
저의 부분적 주장이라고 함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의 실제적인 정당함을 말할 수 있다고 할 때에 상대적 보편으로서의 개연성은 그 실제를 자체적으로 말하지 못한다고 할 때에 철학적으로도 실제에 입각한 사실을 누가 바르게 말하는 것인가 생각하시라는 말씀드립니다. [2004/01/29]
이명신
제가 자존이라고 함을 증거함에 대하여서 비합리적이면서도 자체적 정당함을 가진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상대적 보편의 판단을 받지 않는 자존의 절대자의 절대 보편은 상대적 보편의 판단하에 있지 않으면서도 핑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에 열어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2004/01/29]
푸른장미 이명신님--한 문장에서 말하고자하는 주제가 끝나면 일단 마감을 하고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세요 숨차서못 읽겟고 말씀하시고자하는 핵심이 증발됩니다 -- 자신의 윗 윗글을 다시한번 정독해 보시기 바랍니다 뜻은 알겠지만 이런 문장은 지금 아무도 쓰지 않습니다/샨티님이나 제 문장을 읽으면서요--- [2004/01/29]
이명신
푸른장미님, 님이 상대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면, 글쓰는 작가로서 여러가지 패턴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하여서는 열려있어야 하겠지요.. 강요는 아닙니다만 지나치는 모습이 될것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2004/01/29]
시선 깨달음이란...어렵게 말하던 ... 쉽게 말하던....명백함을 전해줄수 있어야 하는데....'호환성'이 상실된 깨달음은.....'전달'이 불가능한것이 아닐까......요? '상대적인 사고'는 '열린 귀'로부터 나오는 거지요... [2004/01/29]
샨티 결국 근거는 제시할수가 없습니다..압니다..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사상속에 철학속에서만 존재하는 추측일수도 있다는것입니다,..아니 상당히 그럴가능성이 농후합니다..님은 상대성을 인정하라고 하시지만 그것은 님의 방향으로만의 방향성입니다...그런것은 누구도 인정할수없는것입니다..님의 토론 방식은 [2004/01/29]
샨티 오히려 님의 신앙을 곤란한것으로 만들수있습니다..신앙은 가슴이어야합니다...왜 다른이가 절대적인 실체를 인정할수없을수도있는데 그것을 인정하는것이 상대성을 인정하는것이며...그렇다면 그럴수있는 개연성일텐데.그것을 수용해야만한다는겁니다...말이 되는 이야기입니까? [2004/01/29]
샨티 상대성은 둘다에게 적용되어야합니다...에휴....죄와악에대해서는 다른님들과 토론하고 저도 기독교적인 시각을 지켜보아야겠군요...그러나 참으로 안타깝군요...시간....ㅡㅡ;;; [2004/01/29]
푸른장미 상대적 사고라 하시지만 도저히 납득 안가는 문장을 이해하라는 것은 이명신씨야 말로 상대적 사고가 필요하다는논리가 되겟네요/ 아무리 여러가지 패턴이있다고하지만 저도 책좀 읽엇고 글 쫌 썼지만 --그야말로 호환이 안되네요--독서하시면서 문장을 살펴 보세요-- [2004/01/29]
http://geocities.com/vossc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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